따뜻해진 기차 내부에서
이제는 따뜻해진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 몸체는 제각기 다른 곳을 원하는 승객들을 조용히 들어 올린다. 오늘따라 그 몸체는 유목민을 달래주는 따뜻한 안방 같다. 바깥이 마침 추워져서일까.
어느 학자는 기차가 생긴 덕에, 혹은 그 때문에 시간과 공간이 축소되었다고 말했던가. 그 말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터널을 지나 논밭의 풍경을 스쳐 나를 도시로 데려다주는 이 몸체가 어찌나 소중한가. 나무판자의 양옆에 얇은 철길을 깔고, 그 위에 못질을 하고, 그 주변으로 자갈을 뿌린 그들의 수고로움이 얼마나 감사한가.
지금은 늦은 밤이다. 자주 보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풍경들이 창밖으로 흐른다. 아니, 내게 닿는다는 말이 적당하려나. 그들은 대부분 어둠에 잠겨 있지만, 곳곳의 불빛이 암적을 뚫고 기차에 닿는다. 아침에 본 풍경과 같을 테지만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다.
지금은 낙동강을 지난다. 멀리 이어진 가로등, 그 빛을 받아 은빛으로 흔들리는 강물, 그리고 창에 반사되어 배경처럼 겹쳐지는 기차의 천장 불빛까지. 밤의 풍경은 층층의 빛으로 겹겹이 쌓인다.
밤의 기차의 창문은 절반은 밖을 비추고, 절반은 기차 내부를 비춘다. 건너편으로 긴 잠에 빠진 할아버지가 비치고, 앞 좌석의 털모자를 눌러쓴 남자도 비친다. 붉은 히잡을 두른 여자는 복도를 종종 걸어 다니고, 검은 코트를 입은 여자는 핸드폰에서 새어 나오는 작은 빛을 들여다본다.
빽빽한 아파트 때문인지, 하늘의 별빛은 도무지 기차에 닿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별빛이 보이는 기차에 올라타고 싶다. 창이 없고, 천천히 달리며, 발아래가 은근히 따뜻한 그런 기차. 우동을 팔아도 왠지 좋을 것 같다.
사랑하는 그녀와 고양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도 함께,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그 기차를 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