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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이름이 뭔가요?

직업일기

by 교우

나는 정신병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간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어떤 정신병들이 있는지, 그걸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그런건 아무리 곁눈질로 봐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어떤 문제를 겪고 있든, 입원치료를 결정하는 기준은 한결같아서, 나도 안다. 그건 '자/타해의 위험성'이다. 어떤 정신적인 문제가 원인이 되었든, 그걸 원인으로 자기 자신을 해할 위험성이 있거나 다른 사람을 해할 위험성이 있으면 집중적인 관찰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는 게 있다. 호전가능성, 즉 나아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병식'이 있는지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지금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스스로 알고 있다면 치료에 협조적이고, 행동조절능력도 나아지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극히 정상이에요, 치료 같은 건 필요 없어요'라고 한다면 치료를 거부하고, 행동조절능력도 나아지기 어렵다.


어떤 피고인이 있었다. 그의 죄명은 그의 병환과 어쩌면 별로 상관관계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가 어떤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걸 치료해야 건강한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사실은, 그와 몇 마디만 해봐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가 '병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 병원 다니시는 데는 없냐, 약 복용 중이신 것은 없냐, 아프신 데는 없냐는 나의 말을 손톱만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나는 아주 건강하고 아무 문제가 없으니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 피부병이 조금 있지만 잘 치료를 하고 있으니 걱정할 게 없다'라고 했다. 나는 어떻게든 피부가 왜 안 좋은지 모르니 병원을 다녀보는 게 좋겠다 다니는 김에 정신과도 다녀볼 수 있지 않겠냐는 무리한 권유도 해볼 겸, 혹시나 이미 주변에서 그를 데리고 병원엘 다니면서 정신과 치료약을 피부치료제라고 속여 복용시키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일말의 기대 겸, 그에게 물었다. '피부 치료는 어떻게 하세요? 약 이름이 뭔가요?' 약 이름을 들으면 인터넷 검색을 해볼 요량으로 말이다.


그는 대답했다. '약 이름은 하이타이예요.'

하이타이... 하이타이... 어쩐지 낯익은 이름이다. 나도 복용해 봤던 약이름이었나... 아. 생각이 멈췄다. 그 하얀 가루 세제.


그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과 피부과 치료도 시급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렇지만 어떻게 간담. 병원에 가서 진단도 받고 치료도 어느 정도 해야 '병식'이라는 것도 생긴다. '나는 정상이에요'하는 사람에게, '당신 비정상이에요'라고 백번, 천 번을 말한들, '아, 그런가요'라고 하면서 '병식'이 생기는 게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어렵게 연락이 닿은 가족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갔다. 그는 병원에 다닌 이후로도 완전한 '병식'을 얻지는 못했지만-지금쯤이면 완전한 병식을 얻었거나, 치료를 마쳤을 수도 있지만 그땐 그랬다- 한결 편안하게 의사소통을 하고 일상생활을 했다. 물론 피부도 나아졌다. 그는 나에게 '잠도 잘 자고, 마음도 편안하고, 가족들이 반찬을 해다 줘서 밥도 잘 먹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요즘은 무슨 약을 드시냐는 나의 물음에는 약이 여러 가지고 많아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자기가 먹는 약 이름은 못 외우는 게 보통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깨닫는 건 누구에게라도 평생에 걸친 과업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가 간극이 크면 클수록, 자의식 과잉으로 욕을 먹거나 매사에 자격지심인 꼴불견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나'를 제삼자가 보듯이 객관적으로만 바라본다면 부족하고 어긋난 내 모습까지 껴안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부족하고 어긋난 면을 가지고 있지만 나도 그렇다는 걸 인정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나에게 주어지는 정보들을 허투루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인생을 주체적으로 사는 건 좋지만, 나에 대한 정보의 선택적 취사는 좋지 못하다. 듣기 좋은 말만 받아들이고, 듣기 싫은 말에는 귀를 닫아버리는 건 나를 보호하고 나를 돌보기 위한 썩 좋은 방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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