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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공방

직업일기

by 교우

예전에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아주겠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유언비어가 돌아도 조용히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가 미덕일 때도 있었다. 그저 조용히, 묵묵히 지내는 사람을 높이 샀다.


요즘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가만히 있었더니 가마니로 보이나'가 대세다. 한쪽의 '폭로'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해명'한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폭로가 있으면 당연히 해명을 기다린다. 침묵하면 폭로를 인정하는 게 된다.


그렇게 폭로는 진실 A를 만든다. 해명은 진실 B를 만든다. 폭로자의 재반박은 진실 C를 만든다. 재해명은 진실 D를 만든다. 그런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진실(fact)을 밝히는 일은 '체크(check)' 보다 '공방(공격과 방어)'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같은 일을 함께 경험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건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사람의 기억력은 불완전하다. 그러니 어찌 보면 공방은 필연적이고 당연하다. 꼭 폭로자와 해명자 중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거짓말을 해야만 공방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쩌면 진실을 꿰뚫어 볼 현자는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신 같은 것일 수도 있다.


형사재판은 '공방'이라는 개념에 잘 맞게 설계되어 있다. 모든 증거는 제시하는 쪽이 있고 반박하는 쪽이 있다. 반박의 기회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길고 지루한 공방이 오간다. 마지막에 판단하는 자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는 중간에 편을 들거나 결과를 예단하지 않는다.


형사재판을 경험하는 피고인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 '어떻게 하면 내 말을 믿어주겠냐', '내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내가 안 그랬다는 말 해줄 사람도 수두룩하게 더 있다'는 말들이 나온다. 재판 중에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건만, 그들은 공방의 과정 중에 이미 마음을 다치고 지쳐버린다. 나는 그들에게 '판단은 끝까지 가봐야 안다', '억울하다는 말을 절절하게 만 번을 해야 결과가 달라지는 게 아니다'는 말을 하면서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달랜다.


들끓었던 폭로와 해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기억 속에서 잊힌다. 연이어진 공방으로 인해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 진실은 흥미를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섬광처럼 눈앞에 나타나는 진실을 찾아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루한 공방의 과정을 견뎌내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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