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일기
나는 한 여성의 항소심을 맡았다. 그녀는 1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 받았다.
그녀의 범죄사실은 2건의 절도를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첫번째 건은 아무 병원에 침입해 입원 중인 환자가 사물함에 보관중인 지갑을 훔쳤다는 것이었다. 익히 많이 봐왔던 사건이다. 그런데 두번째 건이 특이했다. 마찬가지로 병원에 들어가 환자용 침대 위에 놓여있던 남의 물건을 가져오기는 했다. 그런데 그 물건이 유아용 가방이었다. 유아용 가방? 그 안에 값나가는 물건이 들어 있었나 싶었다.
항소심 변호인을 맡으면 1심에서 어떤 재판을 해왔는지 그 기록을 먼저 보게 된다. 기록을 보니 이 여성은 정신감정을 받았다. 충동조절장애로 계속 절도를 저지르니 심신미약으로 인정해서 감형을 해달라는 주장을 하면서, 충동조절장애가 있는지를 감정해 달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현실이지만, 여성에 대한 정신감정은 거의 하지 않는다. 형사재판을 받거나 받을 예정인 사람들에 대해 강제적으로 정신감정을 할 수 있는 기관은 공주치료감호소가 유일하다. 그런데 공주치료감호소에는 여성을 수용할 시설이 없다.
그러니 여성에 대해서는 여성의 동의하에 사설병원에서 정신감정을 해야 하는데, 사법기관의 예산 문제도 있는 데다가, 정신감정기간-보통 1달이 넘는 입원기간을 거쳐야 한다-을 견뎌내는 여성도 드물다. 그런데 이 여성은 자발적으로, 감정비용까지 개인적으로 부담해가면서 감정을 받았다.
이 정도 정신력과 재력이 있는 사람이 절도를 왜 그렇게도 반복하는걸까.
여성은 젊었을 적 임상병리사였다. 병원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면서 병원 직원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꿈꿨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남자는 유부남이었다. 결혼을 할 마음도 없고 오히려 사내연애가 들켜 곤란에 빠질 것을 우려한 남자는 점점 관계에 진지해지고 자신의 아이까지 가지게 된 여자를 내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여자를 도둑으로 몰았다. 병원에서 차트나 X-RAY 사진 같은 자료가 자꾸 없어진다면서, 그 범인으로 여자를 지목하는 방식을 썼다.
여성은 충격을 받아 병원을 그만뒀다. 여성은 그 길로 일본에 가 그 곳에서 결혼을 하고 자녀도 둘이나 낳았지만, 그때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 이혼을 하고 혼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는 '병원에서 망신 당한 것을 원수 갚아라'는 식의 환청이 들렸다고 한다.
그녀는 한국에서 기댈 곳도 없이 혼자였다. 여자는 상태가 좀 괜찮을 때는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 지냈지만, 상태가 악화되면 오히려 집에서 칩거를 하면서 병원도 가지 않았다. 옆에서 챙겨줄 사람이 없으니 한번 상태가 악화되면 수렁으로 빠졌다. 그럴 때 여성은 병원으로 가 아무 물건이나 훔쳤다. 왜 훔치는지는 여성도 알지 못했다. 우울증의 수렁에 빠져 헤매이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모르는 물건을 갖고 있고, 그걸로 내가 어디선가 물건을 훔쳤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트라우마가 한 여성의 인생을 파괴했다는 것은 여자가 뭘 훔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기록에는 여자가 과거에 절도죄로 재판을 받은 판결문이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 절도의 장소가 한결같았다. 모두 '병원'이었다. 여성은 우울증의 수렁에 빠지면 집 밖을 나와 아무 병원이나 들어가 그 곳에 입원한 환자의 소지품이나 병원 직원의 소지품 같은 걸 훔쳤다.
나는 그녀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여성은 자신의 삶이 모두 파괴되었고, 아직도 파괴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성의 잘못은 켜켜이 쌓여 이제는 작은 잘못에도 큰 벌을 받았다.
여성을 만나러 갔다. 그녀는 수의를 입고 작은 몸을 떨면서 나와 마주 앉았다. 앉기도 전에 이미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난 여성에게 설명했다. 그녀의 인생사에 큰 연민을 느끼지만, 이미 1심에서 심신미약감경을 받았고 합의를 했는데도 8월이라는 형이 나왔으니 항소심에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그녀는 괜찮다면서 '저는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고, 훔치는 걸 기억도 못하고, 사람구실도 못하고 있는 자신은 사람도 아니니 벌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했다. 그녀는 절도를 반복하고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자신을 수치스러워했다. 가족으로 두 아이가 있지만 연락이 닿지도 않고, 찾아볼 엄두도 내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도 아닌 데 자식을 찾아 뭘 하겠냐면서.
나는 여성에게 1심에서 합의를 대신 봐주고 정신감정비용까지 지불해 준게 누구냐고 물었는데, 그녀의 오랜 친구라고 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자기 죄를 부끄러워했다. 그녀는 자기가 사람도 아니라고 했지만, 그녀의 오랜 친구에게는 그녀가 소중한 친구였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