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기
아이는 요즘 승마를 배운다. 승마하면 고급스포츠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이 곳 제주에서의 승마는 사방팔방으로 부는 바람에 맞서 그 바람에 갈기가 마구 풀어 헤쳐진 말을 타는 것에 가깝다. 어쨌든 아이는 그 승마를 아주 좋아한다.
나는 주말이면 아이를 승마장에 데려다준다. 승마장은 한라산과 한라산을 넘어가는 송전탑 근처에 있다. 차를 주차하고 아이와 내리려는 순간에 주차장 근처에 묶인 말과 말 등 위에 까마귀를 봤다. 까마귀는 말 등에 내려 앉아 부리로 말 털을 뽑고 있었다. 까마귀는 수십 번을 부리로 쪼아 털을 한껏 모은 뒤 날아갔다. 까마귀가 그걸 하는 동안 말은 별로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고갯짓을 몇 번 하기는 했지만, 까마귀를 털어 내거나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아무리 죽은 털을 골라가는 것이라 해도(말도 봄이 오면 털갈이를 한다. 겨우내 말의 체온을 지켜주던 털을 봄이 오면 뿜어버리는 것이다) 부리로 쪼아대면 아플 법도 하건만, 아프면서 시원하기도 해 참는 건지 아니면 까마귀의 극성맞음을 잘 알고 포기해버린건지 무덤덤하다.
찾아보니 까마귀는 높은 나무 위에 주변 나뭇가지를 이용해 밥그릇 모양의 둥지를 짓고, 둥지 안에 작은 나뭇가지, 깃털, 마른 풀 등을 깐다고 한다. 그리고 까마귀의 번식기는 3월부터다. 결국 말 털은 까마귀 새끼가 태어나면 푹신하고 따뜻하라고 뽑히는 거였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건 참으로 중요하다. 어쩌면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 갈 때 무엇보다 필요한 첫 번째 덕목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모든 삶의 과정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을 지키는 건 참으로 중요하다. 그걸 잘 해내지 못하면 '민폐'로 취급 받는다. 의도적이든 본의아니게든 '민폐'로 손가락질 받지 않으려면 조심조심 살고 조심조심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피해의 기준이 모두에게 같을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데시벨 높은 소리를 피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진한 향수 냄새도 피해라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앞을 잘 보고 걷지 않는 것도 피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것들이 뭐 어떠냐는 사람도 늘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산다.
자기 새끼를 위해 털을 뽑아가는 까마귀한테 말이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는 나는 알 수가 없다(말은 사람 말을 하지 못하고, 나는 말 말을 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엔 무덤덤해보였다. 괜찮아서이든, 포기해서이든, '그러려니' 해 보였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세상을 사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남에게 절대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으로 굳게 믿는 건 좀 곤란하다.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사람을 손가락질 하는 것도. 이 지구를 혼자 쓰는 것이 아닐 바에야 나도 누군가에게 필연적으로 피해를 주는 존재이다. 말은 그걸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