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기

어제의 일기

by 교우

내가 이곳에서 살게 되면서 시작하게 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일기 쓰기. 이 곳에 살게 되면서 시작했다기보다는 일을 쉬었기에 시작했을 수도 있겠다. 남는 시간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일기쓰기라는 고전적이고 고리타분한 덕목을 나는 실천해 본 적이 없다. 스스로 꾸준히 일기라는 걸 써 본 적은 없다는 말이다. 숙제로 해 본 적은 있지만. 숙제일 때의 일기쓰기는 당연히 지루했고 지루하다는 변명해 비해 꾸준하지도 않았다. 지루할 만큼 해보지도 않고 지루하다고 말하는게 방학숙제였다. 하기도 전에 해야한다는 강박만으로도 이미 지루해지는게 그것의 속성이었다.


그래도 숙제 말고의 일기쓰기를 동경하기는 했었다. 차분히 자기 자신을 정돈한다는 그 감성도 좋고, 나중에 추억거리가 되도록 소중하게 기록을 남겨둔다는 감성도 좋았다.


그런데 가끔 일기를 써보아도 일기로서의 가치를 갖기는 어려웠다. 왜냐면 나는 일기를 담백하게 적어내려가지 못했다. 나는 가끔 무언가에 꽂혀서, 주로 내 분노의 감정에 꽂혀서, 그 날의 일을 썼다. 감정을 쏟아내버리기 위해. 그러니 나중에 그것들을 보면 갖다 내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제를 일기로 남기기로 했다. 그 날의 일이 아닌 어제의 일을 쓰면 좀 더 담백하게 나를 기록할 수 있을까 해서.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에게서 한발자국 멀어져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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