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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용 Apr 13. 2021

작은 오두막에도 봄이 왔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입주 날도 왔구요

 



"다음 주말에는 오셔도 되겠어요"




2021년 3월 13일.

화이트데이를 하루 앞둔 주말.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다.

삼 개월이나 미뤄진 끝에

우리들의 작은 오두막이 완성되었다는 것!

정녕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봄날을 맞다.

오늘이 4월 13일이니 딱 한 달째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현장을 찾았던,

바로 그날의 이야기다.  


작은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평상에 앉아 핸드폰을 들었다. 곧 가구와 짐으로 가득해질 공간  


밝은 우드톤의 실내.

지붕의 모양을 고스란히 품은 세모꼴 공간.

나무 향기와 새집 냄새가 섞여 코끝을 찌다.

이 냄새는 좀처럼 좋은지 싫은지 정할 수가 없다.

저 끝에서 이 끝까지 걷는데 삼 초면 된다지만,

 눈에는 참 알맞은 크기다.

침구는 꼭 흰색으로 해야지 했다.

(흰색으로 샀다는 얘기다.)

식탁은 우드톤으로 맞추고. 사각보다는 원형이 좋을 것 같다. (결국 그런 식탁을 놓았다는 말)

여기 앉아서 일하면 완벽한 풍경이 완성될 것 같다.

(일은 잘 안될지도 모를 일이다.)


토퍼 위에 결국 흰 침구를 두었다. 발 안 씻고 올라가는 누군가는 열 번쯤 혼이 났고.  
고민하다 산 옷장은 조립하는데 두 시간쯤 걸린 것 같다. 물론 내가 안했다.   


로봇이 별명인 남편은 단 하나의 하자도 놓치지 않을 기세다. 매의 눈으로 여기저기를 살핀다.

봐도 잘 모르는  가만히 있어도 다.

친절하신 현장 사장님이 불쌍할뿐. (조금만 참으세요.)

이제 와 얘기하자면 그냥 좋았다.

자그마한 펜션 원룸이나

캠핑장 잔디밭과 다를 것도 없지만.

손바닥 만한 공간이어도

'우리 집'이라는 건 그런 건가 다.



지난겨울이었.

집이 채 자리를 틀기도 전에

튤립을 칠십 다섯 송이나 심어 놓았는데.

집이 오기 전에 꽃이 먼저 피면 어쩌지.

혹은 꽃이 안 피면 어쩌지.

걱정이 많았다.

작은 꽃밭에는 이른 걱정이 무색하게

푸른 순이 솟아 있었다.  참 대견한 일다.

(하나 둘 셋 넷.... 세어보니 칠십 여섯 개다. 이상다.)


몇 송이인지 세어주세요. 왜 한 송이가 더 많지. 4월 초가 되자 하나둘 피기 시작한 튤립들.


입주를 마치고 주변 탐방을 시작했다.

은근히 맛집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

산더미 같이 주는 해물 칼국수,

왕 뼈다귀가 들어가는 쌀국수, 쫀득한 식빵 맛집,  

정갈한 가정집 밑반찬에

겁쟁이 개가 있는 국밥집 등을 찾아냈다.

+ 빈티지 가게를 하나 발견했는데 아주 무서운 곳이었다. 물건 몇 개를 사고서야 겨우 빠져나왔다.

(당분간 만나지 말자)


무서운 빈티지 가게에서 산 등. 치마 밑단 주름처럼 접힌 갓의 모양이 아름답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 곁 꼬마 집과 잔디 마당으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  


똑같은 꼬마 집이 여럿 늘어선 작은 빌리지.

대부분 이곳을 주말주택으로 이용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하나둘 도착하는 이웃들.

경주하듯 작은 창문에 불이 켜지고

장작 타는 냄새로 가득한 멋진 밤!


한 달 동안 딱 한 주를 빼고는 이곳에서 주말을 보냈다.

따지고 보면 작은 정원과 작은 침대와 작은 테이블일 뿐인데.

근사한 나만의 아지트가 하나 생긴 기분이란.

 

맥주가 빠질 수 없는 감성샷 한 장


참, 우리 집 빼고는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 함께.

옆집에는 흔쾌히 장작을 나눠주시는 멋진 이웃분과 버섯 머리를 한 아주 귀여운 꼬마가 있다.

 곧 여름이 되면 바로 옆 계곡에 발을 담글 것이다. 물놀이하는 여섯 살 아이들 가운데

부끄럼도 모르고 우리 부부가 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지난 주말에는 텃밭에 만원 어치 채소를 심었다. 금파야 쑥쑥 크렴.







이 작은 오두막에선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몇 년간 참 많은 주택을 보고 또 봤다.

사진과 현장은 늘 달랐. 기대감이 아쉬움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싼 집, 아름다운 집, 괜찮은 집은 있었지만 우리 부부의 가슴을 동하게 하는 곳은 찾지 못했.


긴긴 고민 끝에 닿은 이 공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하얀 필터 씌운 사진 몇 장

앞으로도 종종 이 작은 페이지에 남길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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