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얻은 것과 잃은 것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MRT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아슬아슬한 시각에 내려 택시를 잡아 겨우 교육관에 도착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7시까지 온종일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듣고, 필기시험과 실기시험 그리고 마지막 인터뷰까지 아주 고단한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마지막 관문이라 생각했던 시험도 무사히 통과하고 교육까지 클리어!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육관을 벗어났다.
MRT를 타고 달리는 동안 넋 놓고 창밖을 보는데 문득, 내 시야를 가득 채운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다.
싱가포르 생활에 서서히 적응하게 되면 지금과는 달리 익숙해진 모습으로 그저 당연한 일상이 될 테지만 지금의 이 설렘을 기억해야지.
지금처럼 늘 감사한 마음으로 항상 겸손해야지 다짐했다.
보면 볼수록 참 매력적인 나라임이 틀림없다.
몇 년 전 가족들과 여행을 왔을 때와 확실하게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여행 온 관광객도, 학업을 위해 온 유학생도 아닌 그저 일에 대한 열망을 품고 날아온 외노자일 뿐이다. 그런데 왠지 이곳이 나의 제2고향 두 번째 나라가 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미 싱가코리안일지도...
낯선 땅에 홀로 서있는 나에게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준 싱가포르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잃은 게 있다면
이전의 그저 순수했던 마음이다. 세상을 곧게만 보던 순수함과 무지함 그사이.
그리고 따듯한 엄마의 집밥,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낼 수 있었을 시간.
싱가포르에 콩깍지가 씌어 주변의 다양한 나라를 여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우습게도 그때의 나는 싱가포르가 작은 도시는 맞지만 모든 곳에 내 발길이 닿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넓은 도시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동안은 싱가포르를 구석구석 다니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다른 나라들은 싱가폴 master 한 이후에 앞으로 하나씩 가면 되지 뭐' 하고 말이다. 휴.. (후회는 없었지만 사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COVID-19로 인해 뒤늦게 후회를 하긴 했다)
그렇지만 난 충분히 많은 것을 얻었다.
한국에서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했고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다는 그 사실을 배웠다. 물론 싱가포르에 오기 전까지도 나는 나를 사랑했지만 지금만큼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또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외국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맺었고,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직접 부딪히고 깨지며 배우는 삶을 경험했다.
이 커다란 세상을 더 알아가고 싶어졌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한국과 싱가포르에 이어 다음은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감사하다.
내가 이곳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난 어디에 있었을까
잔잔히 들려오는 음악에 모두가 매료된 순간. 직접 보고 듣고 느끼기에 저마다 완벽하게 로맨틱한 밤이었다.
내가 이렇게 멋진 곳에 살고 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