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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ggy pie Jun 21. 2022

힘든 일은 왜 한 번에 일어날까?

순식간에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나


싱가포르 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에 한꺼번에 마주하게 된 시련의 타임라인


1. 베드 버그

2. 매니저의 차별

3. 부모님의 교통사고

4. Filipino 직장동료의 오해

5. 처음 겪어본 역류성 식도염  

6. 과장님과의 신경전

7. 자격지심



1. 베드 버그 Bed bug

싱가포르에 도착하자마자 일주일간 급히 예약했던 호스텔에서 지냈다. 첫 출근 이후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밤 11시 퇴근길에 지친 몸을 이끌고 호스텔로 돌아와 샤워를 끝내자마자 잠에 드려던 순간 베개 사이로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피곤한 나머지 덜 말린 머리카락을 들어 올리며 몸을 옆으로 뒤척이는데 또 한 번 무언가 느껴졌다. 동시에 팔과 다리를 포함해 온몸이 간지러워 박박 긁으며 램프 스위치를 딸칵 켜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누웠던 그 자리의 새하얀 침구 위로 수십 마리의 바퀴벌레 같은 작은 괴물들이 한데 모여있다가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목격한 그 장면은 정말이지 처참한 광경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 온몸을 긁으며 침대를 멀뚱히 서서 바라보는데 너무 놀라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창문이 없을뿐더러 공간 자체가 다소 쾌적하지 못한 컨디션이었다.

놀란 마음과 화를 진정시키고선 도저히 이 방에서 잠을 청할 수 없어 호스텔 주인에게 찾아가 이 사실을 전달했다.


그 시각 새벽 1시, 다른 곳으로 당장 옮길 순 없었기에 다른 방으로 안내해달라고 요청했다. 호스트는 베드 버그를 마주하게 한 이슈에 대해 미안하다며 당시 남는 빈 방이 없어 막 정리를 끝낸 하우스키퍼가 나오는 방을 가리키며 자신의 새 방을 내주겠다는 것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안내받은 호스트 방에 들어서자마자 침대부터 살펴본 후 누워서 겨우 잠이 드려고 하는데 '설마.. 또 나오겠어' 생각하던 찰나 아니나 다를까 또 반복되는 순간이었다.

전신 거울을 보니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가 붉은 반점처럼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점점 징그럽게 변하는 내 몸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냥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까짓 걸로 내가 이렇게 약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결코 이까짓 일이 아니었다. 침대에 눕기가 무서워 12시간 동안 일을 하고 녹초가 된 상태에서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새벽 4시경 로비 소파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며 밤을 새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된 나의 몸에게 아늑한 집에서 푹 쉬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새벽 6시가 되어 런드리 룸으로 가서 내 이불과 개인 물품들을 탈탈 털어 세탁을 하고 소독을 했다.

한숨도 못 자 눈이 충혈된 채 발등에 불똥 떨어진 듯 나에게 적합한 집을 샅샅이 찾아보며 출근길에 나섰다.


33도가 넘는 날씨에도 만신창이가 된 몸을 숨기기 위해 긴 카디건과 긴바지를 입었다. 얼굴을 제외하고 이미 손등까지 퍼져버린 상태라 사람들이 알아볼까 두려웠다. 가족에게 몸 전체 사진을 찍어 보내니 당장 한국에 들어오라고 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가만히 있어도 온 몸이 따가웠다 가려웠다 무엇보다 그런 몸을 보기가 힘들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아파서 이대로 죽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베드 버그 후기는 다양했지만 내가 직접 겪어보니 너무 큰 타격감을 안고 꽤 오랜 시간 동안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했다.

지금도 그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작은 벌레 한 마리도 증오하게 되었고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는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2. 매니저의 차별

당시 나의 직급은 assistant manager였다. 기본적인 업무와 동시에 manager의 업무를 조금씩 배우며 support 해야 했다. 무엇보다 심장부로 불렸던 wisma branch office에서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 속에서 나의 직속 선배이자 상사가 된 한국인 매니저에게 도움이 되는 직원이 되고 싶었다.


첫 출근 이후 교육받았던 데일리 업무 외에는 전체적인 흐름과 각자의 포지션을 파악하고 내가 서포트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배우는 자세로 업무 핸들링에 임했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지나도 몇 주째 매니저는 현지 크루들의 업무와 나의 업무 분장을 구분하지 않았고 여전히 나를 투명인간처럼 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체적인 포지션을 알아두기 위해 가장 먼저 현지 크루들(파트타이머) 주로 하는 업무부터 차근차근 파악하고 몸에 익히며 완전히 나의 , 나의 것으로 만들었으니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 하는데, 매니저는 본인의 업무를 어시스턴트인 나에게 알려주지 않고 파트타이머로 오랫동안 근무 중인 현지 크루에게 주요 업무를 맡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현지 크루를 assistant manager 진급 또는 채용을 하는 것이 마땅한데, 이미  자리에 내가 채용되어  것이다. 그런데 매니저는 현지 크루들에게 인사이드, 나에게 아웃사이드 업무만 시키는(?) 방치된 상태였다.


또 나를 대하는 태도와 크루들에게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물론 새로 들어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상태일 것이고 오랜 시간 함께 의기투합해왔던 동료들과 그간 쌓아온 애정과 사랑이 있을 터이니 어느 정도 공감을 한다. 그렇지만 나와 비슷한 또래인 크루들에게는 사랑에 가득 찬 눈빛과 목소리로 baby를 외치고 나에겐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이것저것 따지듯이 온갖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며 나를 힘들게 하는 것까지 받아줄 순 없는 것이다.


매일같이 미운 오리 새끼처럼 아웃사이드 역할을 감당해내고 있었다. 혼자서 아웃사이드에 있을 때 다른 크루들이 함께 하려고 다가오면 매니저가 나타나 크루들에게 인사이드 업무를 시키는 등 영문도 모른 채 부당한 일을 겪고 있었다.


오기와 책임감으로 꾸역꾸역 해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결국 매니저에게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나한테 왜 함부로 대하시는 건지 어떤 점이 불만이신 건지.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했듯 본인의 부끄러운 행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상대방이 소리를 지른다면 더 큰소리로 또박또박 그간 당신이 나에게 해왔던 행동에 대해 읊어주는 게 인지상정.

매니저는 분에 못 이겨 내 말을 자르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반복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부장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확실하게 말해야만 하는 성격이라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사실 부장님은 처음부터 오래도록 내가 여기서 함께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나를 마음에 들어 하셨고 그래서 내심 부장님은 든든한 내 편이라 생각하고 겁도 없이 스스럼없이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다 이야기했던 것 같다.


다음 날 매니저는 오피스에서 부장님과 면담을 하고 왔는지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이야기 내용은 다음 편에 계속..)


3. 부모님의 교통사고

업무 중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부랴부랴 화장실로 가서 전화를 받자마자 언니가 하는 말이 엄마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이송 중이라고 했다. 안절부절못하며 엉엉 울고 있는 언니의 목소리를 듣고 덩달아 겁이 나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당시에 무섭다며 우는 언니의 말에 너무 겁이 나고 슬펐지만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감정이 북받쳐 우선 일하러 가야 하니까 바로 상황 업데이트를 알려달라며 끊었다.


화장실에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겨우 진정시키고 다시 나갔는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고, 나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4. Filipino 직장동료의 오해

assistant manager 중에 코리안과 필리피노가 대부분이었다. 일면식도 없던 나와 같은 직급인 한 필리피노 직원이 일방적으로 나의 첫인상과 겉모습(?)만 보고 다른 직원들에게 유치하고 이상한 가십거리를 전하며 다녔던 사실을 돌고 돌고 돌아 전해 듣게 되었다.

그로 인해 나와 친해지려던 다른 필리피노 직원이 갑자기 쌀쌀맞게 대한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정작 가십거리의 주인공이 되었던 나는 본인의 얼굴을 본 적도 없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허탈하고 속상했다.

여기가 중학교인지 일터인지 헷갈릴 만큼 적응이 안 되지만 이 또한 내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였으니...


5. 처음 겪어본 역류성 식도염

싱가포르에 와서 매일 밤 11시 퇴근으로 인해 시작된 역류성 식도염으로 점점 건강이 좋지 않았다.

업무 특성상 8 to 18 또는 13 to 23 인지라 오후 근무를 하게 되면 밤 11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또 식사 시간이 애매했던지라 퇴근 후엔 항상 배가 고파 이것저것 많이 먹게 되었고 나의 루틴이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먹고 피곤하니까 소화시킬 틈도 없이 자고 다시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하기를 반복했더니 건강했던 내 몸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목 넘김이 이상해지고 답답한 느낌에 밥먹듯이 병원을 다니게 되었다.


6. 과장님과의 신경전

첫 회식 날, 부장님의 시선과 그를 향한 과장님의 과잉한 태도가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저마다 입장이 다르겠지만, 당시 나의 관점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직장 내 성희롱뿐만 아니라 모두의 일상 속에서 자신을 지켜야 할 권리가 있고 이것은 의무이자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회식자리에서 그런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부장님의 무례한 행동에 놀라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씀드렸고, 잠시 후 과장님은 조용히 나를 밖으로 불렀다. 과장님은 쏘아붙이듯 "ooo 씨, 방금 부장님께 예의 없이 무슨 경우예요? 장난해요?" 라며 나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지금껏 부장 비위나 맞추며 눈 감고 그냥 넘겨왔을 과장의 모습을 상상하니 더 화가 났다.


이 상황을 제가 왜 책임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방금 하신 말씀에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지 되물었다. 직접적으로 그러시는 게 아니니 기분 좀 맞춰드리고 분위기 흐리지 말자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때부터 나는 대답을 대신해 사나운 눈빛으로 과장을 쳐다보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에서 그것도 해외법인에서 더러운 문화가 자리 잡혀 이에 대한 책임을 도리어 직원에게 묻다니.. 앞에서 하지 못할 말과 행동은 뒤에서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후 나는 과장의 눈 밖에 나 업무적으로 매번 부딪히게 되었고, 작은 일도 큰일이 되어 나를 쫓아오곤 했다. (다음 편에 계속..)


7. 자격지심

출근길에 sns를 하던 중 대학 동기의 취업 소식을 듣게 되었다.


때마침 교수님의 안부 연락이 왔고 그 동기의 취업소식을 알려주는 동시에 싱가포르에 있는 동안 다양한 길이 열려있으니 많이 경험해보고 도전해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문득 '나는 왜 아직 내가 원하는 꿈의 영역에 있지 못하는 걸까'라는 조급함이 밀려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같은 대학교에서 같은 전공 수업을 듣고 같은 꿈을 꾸던 동기가 취뽀를 한 것이다.


아껴두고 있던 나의 꿈에 대한 자극을 느꼈고,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시련들이 몰려오며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그 당시의 나는 축하의 마음보다 배가 아팠던 것 같다.

28년 동안 살면서 가장 자존감이 바닥까지 차고 올랐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내게 일어난 힘겨운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못난 마음을 둥글둥글하게 가다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구절절한 긴 이야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 <나는 생각보다 강하다>로 곧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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