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5일의 꿈
엄마가 나무에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했다고 새벽녘부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규모가 베란다 화분이 아니고 거대한 밭이다. 아무래도 우리 집은 귀농을 시작하기라도 한 듯, 어마어마한 부지에 성인 키만큼 정도 자란 나무들이 규칙적으로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엄마 말처럼, 나무에 꽃봉오리들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날이 차다. 그래서 그런지 이 꽃봉오리들은 목련꽃처럼 털이 보송보송한 얇은 막에 쌓여 망울을 터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살짝 분홍빛이 맴도는 꽃망울들이 추운 가을이 가고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하지만 엄마가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벌써 봄이 왔는지 알고 피어난 꽃들이 얼어 죽었다며 탄식소리를 내뱉는다. 가만히 보니 군데군데는 비닐하우스처럼 비닐로 지붕이 만들어져 있고 그곳의 꽃망울들은 어느새 활짝 피어 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비닐로 씌워져 있어도 아직 남아있는 겨울바람을 피하지 못했는지 축 쳐져 있었다.
엄마가 큰일이라고, 이번 양파 농사는 망했다고 도대체 뭘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리저리 뛰어다니신다. 지금까지의 모든 꿈이 그랬듯 양파가 사과처럼 나무에 열린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지 않고, 나는 그저 이 넓은 밭이 아름다운 꽃밭이 될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신이 나서 꽃망울들을 관찰하고 있다.
그렇게 난, 좀 더 깊은 숙면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분홍색 꽃들이 떨어진 자리에 주황색 껍질에 둘러싸인 양파들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양파과수원에서 느꼈던 겨울바람의 한기와 그에 맞서 귀여운 꽃망울을 맺고 있었던 양파 나무.
혹시나 해서 검색해 봤지만 역시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고개를 빼꼼히 내민 양파들만 수두룩 하다.
땅속에서 벗어나 한번이라도 나무에 중얼중얼 매달리고 싶었던 양파들의 간절한 바람이었을까, 아니면 한번 즈음 데이지 같은 꽃잎을 갖고 싶었던 것일까, 내 꿈속에 나온 양파들은 이제 막 분홍색 꽃망울을 터뜨리기 위해서 열심히 겨울바람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