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척하는 인간들이 더 무서워
나는 전화를 통해서 고객과 소통하는 일을 오래 했다
그래서 전화를 할 때마다 상대방의 목소리에 초집중을 하는 감각이 발달했다고 자부한다.
애초부터 의도하고 노력했던 건 아니다.
목소리를 대하는 수많은 경험치가 올라가면서 데이터베이스화 된 것일 것이다
사람은 본인이 원하던 원치 않던 , 목소리도 관상이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음성을 통해서도 인격과 성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나더러 어떻게 그 차이를 아느냐고 ,
아니 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고 해도 뚜렷하게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난 전화를 받으면서도 상대가 어떤 인간일까를 알아내려 감각을 세웠기 때문인 것 같다.
직접 만나지 않고 계약이 체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상상하고 호흡하는 정도나 말하는 속도, 발음의 정확함,
톤의 높낮이까지 자세하게 듣는다.
사람 자체가 목소리와 말하는 투에 감출 수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뚝뚝 묻어난다고 본다.
음성의 톤과 응대하는 태도 하나만으로도 그 인간의 인간성이나 성품이 어떨지가 다 드러난다.
'이 사람 참 진실하겠다'
'이 인간은 없는 교양머리를 감추려고 거들먹거리면서 멋 부리며 말하는구나'
'가방끈 짧고 무식하고 고집스럽겠다'
'순박하고 겸손하겠다. 더 힘을 내도 될 텐데..'
얼굴 표정으로도 사람은 드러날 수 있지만, 그건 웃는 미소나 친절로 감출 수도 있다. 그런데 목소리나 말투는 그게 안된다. 더 적나라하다
얼굴 보며 알게 된 사람은 3번은 만나봐야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
그런데 음성만으로 관계를 튼 경우라면 5분 정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보면 그 인간성은 견적이 나온다
내가 그렇게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내 안에만 그런 식으로 사람을 인식하는 잣대가 있어서
사람은 어느 정도 음성으로 다 드러난다고 여기고 있다
목소리는 뭘 입어도 벌거숭이처럼 라인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목소리에 좋은 옷을 멋지게 입히려면 진실하게 잘 살아야 한다
음성과 말투로 좋은 사람인지, 좋은 척하는 사람인지 알기도 하고,
허세는 있지만 본심은 착한 사람인지를 판단해서 틀린 적이 거의 없다.
상대방의 방귀 냄새로 고구마를 먹었는지
고기를 먹었는지를 알아내는 것보다 더 쉽다.
몇 년 전에도 제빵학원 취미반에 가려고 두세 군데 전화를 해서 담당자에게 문의를 했다. 그중에서 가장 척하지 않고 우직하게 대꾸하던 소박한 음성 톤의 원장이 있는 곳으로 결정했다.
막상 가서 사람을 보니 전화로 음성을 듣고 상상했던 것과 같았다.
얼굴도 음성처럼 점잖고 뭔가를 말해 줄 때도 수다스럽지 않았다.
과장하거나 오버하거나 허세라고는 없는 태도의 원장이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는 곳은 붕붕 뜨는 말투의 원장이,
자리가 없을 정도니까 빨리 등록하라고 했었지만
많고 많은 제빵학원 중에 내가 왜 미어터진다고 주장하는 그 학원에 가야 하는지
특별하다는 이유를 설명해서 설득하지 않고 바람잡이처럼 ' 나를 그냥 믿어'라는 식으로 말하는 곳이었다.
지가 믿으라고 하면 내가 지를 믿어야 하나?
믿는 건 내가 알아서 하는 거다.
믿게 끔 하는 이가 없다면 안 믿는 것도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나이 쉰을 넘기고 그 정도도 못 알아채고 후 둘린다면 맹하게 산거라고 본다
이 감각이 날이 갈수록 무뎌질지 더 예리해질지 모르겠지만
난 여전히 나도 모르게 사람을 대하거나 전화를 하게 될 때마다
저절로 이런 감각이 고개를 들기 때문에 써먹고 있다
물론 나의 사람됨이나 인성도 나 같은 감을 지닌 어떤 누군가에게 들키고 있겠지..
아무렴 어떤가?
서로 잣대질을 하는 거지만 혼자 속으로 하는 거라 별로 위험하지 않다.
뭔가 있어 보이는 감각이지만 초능력도 아니고 그저 거리재기다.
나의 이러한 <목소리 듣고 인간성 감별하기> 신공은
오래전 이민 비자를 받을 수 있던 병아리 감별사처럼 감별 잘한다고
생업으로 연결되거나 돈이 되는 일이 될 수 있는 능력도 아니다
달인이라고 칭송받으며 방송에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체가 없다
그저 나를 거친 타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 태세일지도 모르겠다.
권투 용어로 일종의 쨉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