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
그럼 그냥 만나지 말자고
20대 때 마지막으로 보고 소식도 모르다가 30년 만에 연락이 된 동아리 친구가 한국에 왔다.
예전에도 연애를 열심히 하더니 결혼도 일찍 하고 유학 가는 남자를 만나서 미국에 가서 눌러앉아서 오래 살았나 보다.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다며 한국 정치나 정세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30년 넘게 외국에 사는 나는 우라지게 한국정세에 관심이 많은데...
지난달 그녀를 누군가가 동아리 OB카톡방에 초대했다. 나와 카톡으로 한 시간 이상 새벽통화를 할 때는 미국에 있었는데 며칠 전에는 서울에 와 있다며 톡이 왔다. 당산동에 사는 동생집에 있다며 서울 지리를 잘 모르니 만나러 그쪽으로 오라고 한다.
오늘 아침에 톡을 날렸나 본대, 오늘 12시 30분 이후에 시간이 된다며 얼굴 보자는 내용이었다. 나는 매월 2회나 발행하는 웹진을 편집 마감하느라 유독 어젯밤에 밤을 새웠기 때문에 새벽에 잠이 들었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나서 그 친구의 톡 문자를 봤다.
친구는 30년 만에 얼굴 한번 보자는 데도 시간 약속을 잡기가 참 애매했다. 친구는 내가 먼저 만나자고 제안한 시간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누굴 만나야 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동의 못하고 나올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날을 찾아서 다음에 보자고 했던 건데 갑자기 오늘 당일에 짬이 났는지 오늘 낮 시간에 만날 수 있냐고 먼저 톡을 보내온 거다. 까다로운 성격의 나는 이 상황이 약간 불쾌했다.
내가 비록 생활은 자유부인 같아도,나름 엄청 할 일이 많아서 미리 약속을 해 줘야 시간을 낼 수 있다. 난 하루 종일 노는 것 같아도, 사실은 하루 종일 일하는 사람이다. 홈페이지도 직접 만들고 손보고 매일 올려야 하는 중국에 보내는 교민지기사도 편집도 집에서 다 해야 하는지라 어떤 날은 걸어서 문 바깥으로 5분도 나가지 못할 때도 있다.
당일 몇 시간 전에 문자 보내서 의향을 물어보고 있는 톡 문자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다고 해도, 작정하고 약속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다.
오늘 갑자기 짬이 났는데 그 시간에 너나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보여서 기분이 꿀꿀했다. 오늘 만나자는 의향의 문자는 최소한 그제나 어제부터 보냈어야 하지 않을까?
12시반쯤에 보자고 아침에 보내진 친구의 톡을 보고 내가 12시 20분에 보낸 답장 톡 문자는 여전히 안 읽혔고, 그녀가 한국에서 쓴다고 알려 준 번호로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는다. 뭐지?
30년 만에 만나는 얼굴이라고는 해도 별로 안 친했던 친구라 빨리 보고 싶지도 않고 짬 시간에 잠깐 시간 축내서 만나고 싶은 정도면 바빠 죽겠는데 뭘 굳이 만나야 하나 싶어서 이러는 건가? 그 친구를 만나기도 전에 기분이 상할라고 한다.
지랑 나랑 안 보고도 30년 이상 각자 살았는데 안 봐도 아무 지장도 없는데..ㅋㅋ 이런 생각이 드는 건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먼저 태도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