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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언니 May 14. 2019

김복남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며느리라는 계급에 낙인찍는 악순환

“ 저 소리 들어가면서 밥이 넘어가냐? 지 남편 물건을 딴 년 구멍이 물고 있는 디. 밥 처먹는 거 보면 돼지가 친구야 하겠다 쯧쯧쯧 원 ”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라는 영화에서 시고모가 김복남에게 퍼붓는 잔소리다. 방에서는 김복남의 남편이 티켓다방의 여자를 돈 주고 사서 시끄럽게 성관계를 하고 있고 방문 바로 앞에서 김복남은 그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밥을 먹고 있다. 시고모의 태도와 그녀의 대사 한 마디에 여성 잔혹사의 구조적인 실체가 다 들어있다. 시고모는 불려 온 창녀와 남편이 뭔 짓을 하거나 말거나 마루에 앉아서 밥을 먹는 김복남만을 비난한다. 남자들은 그럴 수 있다고 묵인하면서도 그렇게 당하는 김복남은 우습다고 흉보고 비난한다.


이 영화는 내가 반평생 살면서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슬프고 강렬한 영화다. 이렇게 무겁고 슬픈 영화는 본 적이 없다. 이 영화 속 남자들에게 여자는 사람이 아니고 여자끼리도 상황에 따라 서로에게 사람도 아니다.


늙은 여자들은 서열상 우위에 있으면서,
힘센 남자들에게 빌붙어 살면서,
남자들의 시선으로 여자를 다룬다. 그리고
젊은 여자의 성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에 동조한다.
아무도 남자를 탓하지 않는다.

늙은 여자가 젊은 여자를 비난할 때는
여자의 태도로 남자를 빼앗겼다거나 여자답지 못함만을 욕하는
아이러니하고도 슬픈 상황이 그려진다.




때리는 남자를 비난하기보다는, 눈치껏 맞을 짓을 안 해야지 하면서 그러지 못하는 여자를 비난하거나, 바람 부리는 남자보다 바람 부리게끔 만든 게 여자라며 여자를 탓한다. 도와줄 생각도 없으면서 당하고 사는 병신 같은 년이라고 여자는 여자를 비난한다. 힘없고 무기력한 여자더러 분노하지 않는다고 한 번 더 비난한다. 데리고 살아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고 반항하는 여자를 욕한다.


엄청난 이 영화의 작가는 남성이라고 한다. 어떤 남자인지 몰라도 이 시나리오를 끝으로 그 어떤 작품도 쓰지 않고 있다고는 해도 여자를 둘러싼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 영화가 나에게 꽂힌 이유는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해서다. 내가 시엄마를 사람으로 보지 않기로 정한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엄마는 나를 위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 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나와 남편은 오랫동안 sexless부부다. 남편과 내가 90년대 후반부터 중국 생활을 한 것이 아마 그 원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은 들지만, 어쨌든 남편의 방만하고 책임감 없고 놀기 좋아하는 한량 같은 문란한 생활태도 덕분에 나는 과부처럼 지냈다. 남편은 바깥에서 술 먹고 다니고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여자도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한다. 남편은 나에게 달려들지 않았고 나는 사네 안 사네 한국으로 애들 데리고 들락거리기도 여러 번 했다. 아직도 이혼을 하지 않고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여태까지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다 늙어서 뭐 이혼을 하냐? 싶은 자포자기 인지도 모른다.


내가 40대에 접어들었을 때였을 것이다. 시엄마는 나와 남편이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추궁과 참견을 해댔다. 이미 아들도 하나 낳은 우리의 성생활을 시엄마가 왜 그렇게 신경을 썼던 걸까 지금 생각해도 이해는 안 가지만 메타인지능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맹한 시엄마의 며느리 비난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니 남편에게 파트너가 있다는 걸 네가 안다며? 넌 어쩌면 남편이 섹스파트너가 있는 걸 알면서도 괜찮을 수가 있니? "  


한국에 잠깐 가서 시가에 머물던 어느 날 시엄마가 다짜고짜 나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 무슨 말씀이세요?"

" 쟤한테 여자가 있는 걸 네가 안다던데? 알면서도 그냥 두는 거라며? "
" 무슨 여자요? "


남편이 지 엄마에게 뭐라고 말한 건지 자 조치종을 모르지만, 자기 아들인 나의 남편에게 같이 노는 중국인 여자 친구가 있다는 걸 며느리인 내가 알면서도, 남편에게 섹스파트너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남편에게 지랄을 하지 않는다는 걸 시엄마로서 혼내고 싶다는 건가? 그렇게 노는지 아들은 괜찮고 지랄 안 하는 내가 문제인 거라서 혼나야 한다는 건가?


도대체 이게 뭔 소리인가?

그때 마침 남편이 2층에서 내려와서 시엄마와 내가 말하고 있는 부엌으로 왔다

난 남편에게 물었다.


" 내가 너에게 섹스파트너가 있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두고 있어? 지금 어머님이 그렇게 말하시네? 내가 알아? 알면서도 그냥 두고 있어? "  


" 갑자기 무슨 이상한 소리야!!" 남편은 당황하는 건지 인상을 쓰며 대꾸했는데 옆에서 펄쩍 뛰며 소리 지르는 시엄마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 야 그걸 얘 앞에서 말하면 내가 고자질한 게 되잖아? "


하.... 시엄마의 아들도 웃기지만 시엄마는 도대체 뇌가 있는 걸까? 지도 딸이 있으면서... 지 아들이랑 뭔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남편에게 여자가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고,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지도 않았다. 바깥에서 노느라고 외박이 잦아서 자주 싸우는 부부였지만, 난 정확히 알고 있지 못했다. 그렇다면 바람 부리고 발정 난 개새끼처럼 집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지 아들이 문제지 내가 혼날 일인가? 시엄마라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공격하듯 혼내듯이 나에게 말해야 하는 걸까 싶어서 기가 막혔다.


시엄마는 남이다.

그것도 아주 나쁜 남이다.


나는 구역질 나는 시가에서 더 머물기 싫었다.

어머님 어머님 하면서 저따위 무뇌충 여자에게 예의를 차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난 그 길로 짐을 들고 내 어린 아들을 데리고 그 집을 나왔다.  


나는 씩씩거리면서 내 발로 나올 수 있었다. 

쉽게 탈출이 가능했다. 그건 김복남과 다르다.


영화 속의 김복남은 섬마을에서 살며 번번이 탈출에 실패하고 유일한 삶의 낙이었던 사랑하는 딸은 죽었다.

지글지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벌건 대낮에 우악스럽게 호미로 감자를 캐던 김복남은 허리를 세우고 태양을 한참 째려보다가 결심한 듯 슬픈 얼굴로 돌아서서 마을의 모든 할머니들을 차례대로 그녀의 방법대로 죽이기 시작한다. 틈만 나면 형수의 몸을 범하던 시동생 철종을 죽이고 목은 잘라서 나뭇가지 꼭대기에 올려둔다. 남편을 죽이고는 남편이 김복남을 때리고 다치게 할 때마다 남편이란 작자가 그녀더러 된장이나 바르라고 했던 것과 똑같이, 남편의 시체 위에 된장을 잔뜩 발라놓는다.


한 때 뜨겁게 한국사회를 휘감았던 미투는 돌파구였다. 

남들이 말할 때 너도 나도 들고일어나서 말할 수 있었기에 시원하고 통쾌하게 해결이 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김복남처럼 가까운 가족에게 당하는 여자들의 사건'은 오히려 미투도 어렵다. 시가 식구의 언어폭력, 며느리라는 계급은 가장 하층민이라도 된 것처럼 막 대하는 관념을 우리 사회 어쩔 수 없는 가부장적인 전통에서 오는 거라 어쩔 수 없다는 개소리에 대항하는 미투는 언제 가능할 것인가 말이다.


시엄마가 맹한 건 물론 내 책임은 아니다. 

남편이 한량인 것도 내 책임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그따위 태도에 원치 않게도 ' 얼떨결에 김복남 취급을 받고 있는 나'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고 쉰이 넘은 지금도 기분이 더러우니 남편과는 같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남편과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십 년이 훨씬 넘었다. 남편도 늙어서 돈도 없고 이제는 그의 엄마가 말했던 그 파트너도 어디로 가고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알 바 아니다. 오래전에는 걸레같이 더러운 남편이랑 성병이라도 옮을까 봐 몸을 섞지 못했고 그때 이후로 나는 초식녀처럼 성적인 욕구가 싸악 가셨다. 야한 영화를 가끔 보고 자위를 한 적은 있다. 서글프게 들리겠지만 어쩌다 보니 야한영화도 귀찮고 '젖지 않는' 무미건조한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잘못한 결혼 같았지만 무르기 싫었던 탓에 어영부영 타이밍 다 놓쳤다. 

난 이혼을 하지 못했고 결혼을 연명했다.  

열심히 일하고 아들 하나 길러서 괜찮은 대학에 보낸 걸 위로삼고 있었을 뿐이다.  


난 며느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내 남편의 엄마도 시엄마 노릇을 마음껏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시가에서는 내가 돈을 좀 벌어봐서 말을 안 듣는 거라고 했다고 한다. 참 웃긴다고 본다. 나에게 한 일은 다 까먹었나 보다.

 

나의 시엄마는 시집살이를 엄청 했다고 한다. 나에게 자신의 상처를 전가시킴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씻어내려는 시도를 자신은 인식하지도 못한 채 시시콜콜 해대고 있었던 것 같지만, 나는 시엄마의 상처를 치료하는 일에 이용되고 싶지 않았다. 

며느리는 시엄마의 상처치료제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김복남이 돼 주기를 거부했다. 서로 김복남을 만들어가며 폭탄 돌리듯이 상처주기를 해대는 여자들의 이벤트에서 난 초장부터 발을 뺐다. 상처가 되는 순간에 도리는 해야 한다는 둥 머리들 이대고 가족이니 소통하자고 들썩거려봤자 다 소용없었을 것이다. 남보다 못한 시엄마 본인의 상처는 본인이 좋아하는 하나님에게 울면서 기도라도 해서 치료하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리 상처를 주려해도 난 상처를 받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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