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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언니 Jun 04. 2019

며느리의 도리?

왜 니가 결정해

며느리가 된다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자신의 아들과 결혼한 배우자에게 '이제 넌 우리 집에 들어온 가족', ' 내 아들이 우리 가족 안으로 데리고 온 우리사람' 이라며 며느리를 데리고 앞으로 할 일을 계획하거나, 당연히 며느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여러 가지 일을 의무 지워주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 뽑은 신입사원에게 하듯이 빨리 밥 값 잘 하기를 요구하고 무더기로 기대한다. 자신들 가족처럼 하라고 달라지라고 고치려들고 혼내며 가르치려 드는 시가의 태도는 큰 스트레스다.

며느리에게 가풍을 익히게 하는 건 시가식구 모두에게 결혼과 동시에 주어진 권리라도 된 듯 착각하는 가치관과 태도가 며느리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한 남자의 어머니라는 분의 인생이 얼마나 고되고 척박했었는지를 모르는 데도 며느리라는 이유로 그 시어머니의 몸과 마음을 보살피고 위로해야 하는 게 며느리의 도리일까? 시엄마 몸과마음 살피는 건 며느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는 사고방식 때문에 좋은 며느리감별의 잣대로 '며느리의 도리'를 들이대는 우스운 현상이 발생한다. 


자신들이 과거에 노력했고 치열하게 삶을 살면서 아들을 길렀다고?아니 그럼 며느리는 자신의 친정 집에서 계집종처럼  길러졌나? 아들을 키운 노고를 며느리가 감사해하며 보답해야 할 이유는 눈곱만큼도 없다.


'아드님 잘 길러서 저에게 장가들게 해주셔서 제가 별 고생이 밥 얻어 먹고 잘 지냅니다' 라는 생각으로 감사해야 할 건 없는 거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오래전에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좋은 짝으로 내게 오게 해 주신 어르신으로서의 존경이면 된다.그런 삶을 존경하거나 존중할 수는 있어도 공짜 선물 받은 것처럼 고마운 건 아니다.


' 내가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어떤 계집애가 낚아채가서 누리고 사나?'라고 여전히 생각하는 거라면 어리석은 발상이다. 아들을 어떻게 키웠건 간에 그건 엄마 사정이다.


아들은 이미 엄마의 슬하에서 벗어난 성인으로 다른 여자를 사랑하여 자신의 가정을 꾸린 거다. 아들을 낚아채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여자와 결혼했는지와는 상관없이 죽을 때까지도 아들과 아들 부모의 관계는 부모 자식관계임에는 변함이 없다. 아들이 없어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며느리도 마찬가지다. 아들과 결혼이라는 걸 했을 뿐 원래 며느리를 낳고 기른 며느리 부모의 딸이다. 결혼을 했다고 며느리가 원가족을 떠나 남편의 원가족으로 들어가서 소속사를 바꾸는 게 아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라는 이상한 프로그램을 보면 며느리와 시가식구가 함께 등장하면서 여러 해프닝이 나온다.


얼마 전에는 새롭게 등장한 리포터 박지윤의 시댁 방문기 이야기를 봤다. 함께 음식 준비에 나선 지윤은 “함께 요리하니 좋다”며 즐거운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갑자기 서운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동안 스케줄에 바빴다는 핑계로 며느리 지윤이가 명절 음식 준비를 할 때 돕지 않은 게 섭섭했다는 것. 또한 김장할 때 너무 힘이 드는데 고생했다는 전화는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놀러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일하는 며느리가 그런 것 좀 가끔 생략하고 살면 안 되나?


며느리가 없을 때는 도대체 명절과 김장은 어떻게 했나? 고생했다는 말은 누가 해 줬었나? 자기들이 먹을 명절 음식과 김치를 하는 데 말이다. 명절 음식은 며느리 없는 집에서는 못하는 일인가? 왜 꼭 며느리와 함께 하지 못해서 안달들인가? 일을 시켜보고 싶어서 안달들이다. 사서 고통스러워하고 일거리 다 짊어지고, 전통이라는 허울을 지키느라 여자들은 굴레를 벗어나지를 못한다.


명절에 여자들끼리 일거리 폭탄 돌리지 말고 아예 없애라. 명절을 치른다고 모여서 부엌에서 섭섭하니 어쩌니 따지며 난리부르스 추지 말고 오래간만에 다 같이 외식하면 어떤가? 외식하고 집에 와서 차나 다과만 한다면 너도나도 얼마나 편한가?


굳이 명절 해야 한다면 남자들도 더 적극적으로 명절 준비를 일해야 한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어떤 며느리는  사 먹는 김치가 더 맛있어서 사 먹고 싶은데, 시어머니가 굳이 김장김치를 같이 모여서 많이 담가서 나누자고 하는 바람에 하기 싫어도 피할 수가 없다. 김장 같이 할 시간도 없고, 일하느라고 차려 주는 밥 먹기에도 바쁜 데 굳이 김치를 같이 하자고 아들보다 바쁜 며느리를 불러댄다. 김장에 참여 안 했다고 섭섭하다. 참여 안 했으면서 수고했다는 전화도 없었다고 또 섭섭하단다. 도대체 이런 식의 감정 폭력이 어디 있나?


며느리에게 서운한 점을 털어놓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시엄마들은 자신의 시집살이 고생 담을 늘어놓기도 좋아한다.'난 그런 고생도 견뎠다. 넌?' 하는 것처럼 들리는 줄도 모르고 시엄마들은  “그래서 나는 시집살이를 될 수 있으면 시키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수순을 밟는다. 하나같이 그런 식이다.


방송 속의 박지윤 가족들도 식사를 위해 둘러앉은 자리에서 시아버지가 "시끌벅적하는 게 좋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 번은 정기적으로 지속적을 만나는 걸로 하자. 엄마랑 나랑 둘이서만 지내니까 좀 그렇다"라고 덧붙였다. 희망사항이지만 애틋하게 들릴 뿐이다.


의무적으로 한 달에 한 번이라고 정해 놓은 시가와의 모임이 며느리에게 얼마나 불편할지 헤아리지 못하는 감정 폭력이다. 시집살이가 달리 시집살이가 아니다.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은, 친구던 선생님이던 직장상사던 다 좋다. 시가식구들이 만나고 싶을까


말이야 그럴듯하게 가족 간의 유대를 내세우지만, 며느리는 가족이 아니다. 세상의 어떤 며느리도 가족인 남편과 자녀들과 같이 쉬고 싶지 , 남편의 결혼 전 가족과 자주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게는 못해요. 바쁘기도 하고 제가 한 달에 한번 정해두고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며느리가 몇이나 되나?


그냥 그 시간이 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안 만나게 되는 거다. 면전에서 말할 필요도 없다.


행동으로 보여주면 되는 걸 테니까. 애초부터 그런 식으로 고정적인 만남을 강요 아닌 강요해대는 시가의 어르신들은 멍청한 거다.


월 1회 아들만 부르면 아들이 올까? 효자 아들은 그렇게 정하지 않아도 아내가 있어도 없이도 짬을 내서 알아서 자신의 부모를 자주 찾아뵙는다. 그 의무를 며느리에게 전가하고 부담을 느끼게 짐을 지게 하며, 자주 안 오면 은근히 숙제 안 하는 나쁜 아이 취급하듯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찾아오는 것, 뭔가를 시가식구와 함께 하고 말고는 남편의 부모가 정할일이 아니다. 모두 다 아들과 아들의 아내가 함께 결정할 일이다.  아들의 아내는 시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족외혼을 하는 민족이다. 그 정도가 심해서 몇 년 전 동성동본 혼인 금지법이 폐지되기 전까지는 성과 본이 같기만 해도 법적으로 결혼이 인정되지 않았다. 인구가 많아져서 동성동본이라고 해도 유전학적으로 완전 남남으로 엄청 멀어진 현대사회다 보니 당연히 이 법은 폐지되어야 했다. 여전히 완전히 남이어야 결혼이 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나라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시동생 시누이 모두가 혈연관계로 연결되어 있지만 며느리와는 완전 남남이었다. 시가식구들은 제발 오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자만이 결혼으로 인한 엄청난 베니핏을 받는 것도 아니고, 성은을 입은 무수리처럼 황송하게 남자분에게 간택되어 신분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남자 쪽 가족들이라는 이유로, 지들 마음대로 계급장 달고 위계에 의한 갑질이 주어진 권리인 양 오만하게 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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