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마구 이겨 먹을 수 있어
폭력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은 모든 폭력이 다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자주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이라고 이상하게 명명된 폭력은 '무시함, 깔봄, 우습게 봄, 하대하는 태도'가 전제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너에게 폭력적인 행동이나 언사를 행해도 너는 나를 이기지 못하는 존재, 나보다 약한 존재'라고 여기는 마음이 저변에 깔려있는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나를 이겨서는 안되는 주제에 감히 나에게 반항하고 거역하고 덤벼? 듁을래?
다른 폭력도 유사할 수 있겠지만, 특히 남녀 간의 이성폭력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힘이 약한 경우가 많고 피해를 더 많이 입는다. 남자들은 여전히 여자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교육을 알게 모르게 세뇌되는 사회다.
여자보다 못한 구석이 한 군데라도 있으면 조롱을 받기도 한다. '여자만도 못하다'는 말이 비수로 쓰이는 변태 같은 사회.
중국에서 나고 자란 아들이 교민태권도 도장에 처음 갔을 때 16세가 되었을 때였다. 한국과 달리 단지 내 어린이들이 날마다 태권도도장에서 바글바글 거리는 나라가 아닌 곳에서 살다 보니, 우연히 한국인 관장을 알게 되어 뒤늦게 보내게 되었다. 운동이 될 것이고 교민들 몇몇이 모인다고 하니 교류차원에서 보냈다. 딱 두 번을 갔다 온 아들이 표정이 어두워져서 가고 싶지 않다고 가지 않는 것이었다.
슬쩍 관장에서 물어보니 관장이 뜻밖의 말을 했다. 남녀 교민들 몇몇이 함께 태권도 운동을 하고 탕수육내기 팔씨름을 했는데 , 우리 아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졌다는 것이다. 특히 20대 여성에게 졌을 때 조금 놀렸더니 그게 기분이 상했나 보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남자가 돼가지고 여자한테 졌다'라고 장난으로 놀렸다는 것이다. 조롱은 정신적인 폭력이다.
중요한 것은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의 인식이지, 행동의 내재적 속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어떤 조롱은 제3자들이 보기에는 가벼워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당사자는 크나큰 슬픔에 빠질 수 있다.
그 후에 난 아들에게 그 도장에 가라고 하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를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만 가르치는 폭력적이고, 원시적인 곳에는 보내기가 겁이 났다.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 걸 조롱거리가 되어서는 안되는 데...폭력은 그렇게 가르쳐지는 게 아닐까? 이겨먹어야 하는 데 힘으로만 이기고 다른 걸로는 이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편함이 우격다짐과 힘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지는 남자'와 '이기는 여자'가 모두 '그럴 수 있다' 공감받는 사회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져도 되는 사회.
졌다고 놀리지 않는 사회
거부당해도 절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절망 후에도 선택은 죽음말고도 많음을 알려주는 사회
도전하다 실패해도 우선 건강하면 최고라고 격려해주는 어른들이 사방에 우글우글한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