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빽언니 Dec 20. 2021

고아

 

  

고아. 

형제가 아무리 많아도 부모가 없는 경우에는 고아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빠는 고아였다. 


누나가 둘이고 남동생도 한 명 있었지만 부모님이 일찌감치 돌아가셨다고 한다. 

20대가 되기전에 고아가 되어 왕십리 산동네 위에 있는 고아원에 살았었다고 한다


엄마가 16살때 아빠는 21살 

뽀송뽀송 귀여운 엄마와 잘생긴 동네 고아원 오빠가 연애를 시작했다

아주 이른 사랑을 한 사람들이고 그 첫사랑이랑 결혼을 한 사람들인데도 

결혼생활은 오래도록 순탄치 못했다.


아빠는 가진 게 몸 밖에 없고, 돌보는 어른은 아무도 없는 청년이었고, 

엄마는 그저 가난한 친정에 어린 동생만 다섯이나 있는 순진한 아가씨였겠지. 

연애를 하다가, 헤어졌다가를 반복하며 결국은 결혼을 했지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심하게 반대를 했다고 한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절대 고아랑 결혼하면 안된다고 했다. 

이왕이면 양쪽부모 다 계신 사람 데리고 오라고 했다

내 또래나 나랑 결혼할만한 연령대의 남자들은 전쟁을 겪은 세대도 아니고, 

고아가 그리 흔치 않음에도 엄마는 지레 겁을 먹고 미래의 사위감이 고아는 아니기를 기원했다. 


의지할 데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막막했는지

엄마는 살면서 여러번 경험했다는 거다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잘 살지 못하는 아빠의 형제들도 

엄마의 결혼후 삶에는 위로도 안되고 도움도 안되었다


대학 1학년때 만난 대구에서 왔다는 동아리 남자친구는

'쌀' 을 항상 '살'이라고 발음하는 애였다. 

내가 '쌀'이라 말하고 따라해 보라고 해도 

항상 '살'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애는 

고작 발음가지고 깔깔대며 재미있어하는 유치한 서울여자인 나를 엄청 좋아했다.

그 애는 성실했고 좋은 청년이었는데


나는 그 애에게 어릴 때 부터 아빠가 없었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내 엄마의 표정이 떠 올라서 그 애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게 무슨 세뇌의 힘이란 말인가? 


쉰이 넘은 지금도 가끔 동아리OB모임에서 만나는 그 대구출신동기는 

'동기사랑 나라사랑' 이라고 말하면서 나에게는 여전히 잘 해준다.

너무 가정적이고 돈도 많이 벌었다는 성공한 남자가 되어 있다. 


내가 슬쩍 모르는 척 하면서 그 때의 네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는 

네가 아빠가 없어서였다 라고 감히 말한 적은 없지만, 

물론 그 말도 안되는 편견이 그 친구에게 들킨적도 없는데 난 아직도 왠지 미안하다.


아니 나의 편견 덕분에 그는 나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좋은 처가집 사람들이 있는 짝을 만나서 잘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삥땅 친 장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