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에서 살 때는 국민학교 1학년이었다.
순대국집을 하던 엄마는 갑자기 나를 서울 외할머니댁으로 가라며 시외버스를 타게 했다.
식당에서 일하던 언니더러 나를 데려다 주라고 했던 것 같다.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바로 창 바깥을 내다 보고 있는데, 길건너 인도에서 엄마가 전력질주로 달리고 있었다.
'어? 엄마다'
엄마가 저 정도로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이구나
근데 엄마는 어디를 향해서 저렇게 달리는 걸까?
그 날 이후에 알았지만, 엄마는 아빠를 죽이려고 집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나서 도망을 간 거였는지, 신고를 하러 달려가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신들린 여자처럼 엄청난 속도로 어딘가를 향해 엄마는 달리고 있었다
난 마침 그 장면을 멀리서 목격했고 똑똑히 기억한다.
아직도 난 그 날 엄마를 봤다고 말하지 못했고, 왜 그렇게 달렸던 건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살인미수 방화였지만 엄마는 집행유예로 나왔다
가정폭력에 시달린 여자였다는 것이 정상참작이 되었던 것 같다.
아빠는 다행이 무사했고, 모두 남편인 자기가 잘못했다고
아내를 용서해달라고 탄원서를 여러번 썼다고 한다.
남편을 죽이고 싶어서 불을 지를만큼 엄마는 힘들었던 거다.
엄마가 구치소에서 몇 개월후에 지내고 나온 후로 우리 가족은 좀 달라졌다.
아빠와 엄마는 합의이혼을 했다.
고작 2년동안의 이혼이었다.
2년동안 우리 일상속에 아빠는 없었다.
아빠가 내 기억속에서 다시 등장한 건 내가 국민학교 3학년때부터였다.
다시 재혼하고 살거였으면 뭐하러 이혼을 했었던거냐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당시에 아빠가 찾아와서 날마다 빌었다고 한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무릎꿇고 빌었다고...
그렇지만 그 말을 믿었던 엄마는 다시 예전같은 구렁텅이속에서 살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