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빽언니 Dec 19. 2021

삥땅 친 장군

외할머니도 엄마처럼 내 남동생을 특히 예뻐했다. 


남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 학교도 제대로 못 갔다던 엄마나 오빠들에게 치어서 소학교도 못 갔다던 외할머니가 정작 본인들도 나이먹고 아들 아들 하는 꼴이 내가 보기에는 이상했지만 그녀들은 나는 안중에도 없고 항상 내 남동생만 쩔쩔매며 좋아했다.


'기집년들 더러운 아랫도리 씻은 물에 우리 장군 안 씻긴다' 며 외할머니는 어린 내 남동생을 항상 손수 뜨거운 물을 꿇여서 목욕을 시키셨다. 


대중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더러운 물에 씻어도 되는 기집년이었던 나는 동네 목욕탕에 데리고 다니셨다.


대접도 못 받은 계집아이들이 아들과 차별대우했던 부모가 부당하다고 느꼈다면 왜 본인들부터 딸을 세워주지 않고 다시 아들 밑에 깔아두는 지, 왜 부모세대의 태도를 답습하며 딸을 대하는 지 한심한 노릇이었다.

난 그녀들의 남아선호가 어찌보면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당하는 여자, 깔려있는 여자,  당연히 양보하는 여자들만 보고 자랐기에 본인들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절망적인 결론을 내리니 포기가 쉬웠다.


'할머니 내가 이담에 돈 많이 벌어서 할머니 1억 줄게' 라고 알랑방귀 끼던 남동생은 1억은 커녕 15년쯤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식장 빈소입구에서 일하다가 부조금봉투를 몇 개정도 삥땅치는 외손주가 되었으니...그런 아들 두둔하는 엄마와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계산하던 장남인 큰외삼춘을 대판 싸우게 하는 놈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밤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