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모든 계기가 그렇듯이 사실 글을 쓴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전부 달라진다. 삶이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다는 느낌에 빠지며 더 나빠져도 위엄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매 순간 마주하는 존재에 감응하려 애쓰는 ‘삶의 옹호자’가 된다는 면에서 그렇다.-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오늘은 작정하고 서점에 갔다. 서점의 앱을 통해서 검색하고 4권의 책을 주문 했다. 앱으로 주문하고 한 두시간내로 직접 서점 카운터에 가서 받아오면 되는 서비스가 있었다. 왕복 4키로정도 되는 거리였다. 평소에 이렇게 걸어다니지 않지만 오늘은 썬크림을 잔뜩 바르고 나섰다.
낮에는 별로 길을 걷지 않았던 지라 오래간만에 2시간이상을 길로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다. 문 닫힌 상점과 불꺼진 시커먼 가게만 보고 밤에만 걸어다녔을 때는 몰랐는데, 우리동네에 이런 가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삼스럽게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특이한 가구를 파는 곳과 주인장이 특별히 골라서 진열했음직한 멋진 옷을 파는 가게도 있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1500원에 테이크아웃 할 수 있는 커피점과 수제버거집도 있었다. 짜장면집 문 앞에는 철가방을 실은 스쿠터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렇게 큰 당구장도 있었네',
'치과랑 피부과는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거지',
'시장같이 큼직한 마트가 있군'
모든 시선으로 다 참견하느라 계속 고개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 나를 본 사람이 있다면 시골에서 처음 상경한 아줌마라고 여겼을 것이다.
서점의 앱에는 오전에 주문하면 오늘 중으로도 배달이 될 것처럼 오늘 날짜가 배송날짜로 쓰여 있었지만 배송을 받지 않고 가지러 가는 것을 택하니 많이 걸을 수 있었다. 무겁게 들고 오는 수고도 하고 싶었다.
서점에서 책을 사 가지고 온 게 정말 오래간만이다. 항상 인터넷서점에서 주문했기 때문에 서점의 분위기를 느껴본 것도 오래간만이었다. 멋진 인테리어와 번쩍번쩍한 조명밑에서 옹기종기 나란히 앉아서 누군가가 집어가 주기를 고대하고 있는 책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왜 이제서야 왔어? 글 쓰는 연습 매일 한다면서...우리 다 데려가라'
쓰기를 하다가 읽기가 부족했음을 절실하게 알게 되어 서점나들이를 했더니 책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앞으로 며칠동안은 오늘 고른 4권의 책과 진하게 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