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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수의힘 Jun 21. 2023

변별력이 교육인가?

왜 그리 급을 나누지 못해서 안달인지.

  우리 사회는 이미 사람만이 자원인 사회에서, 사람이 부족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그걸 가장 쉽게 체험하는 공간이 바로 학교다. 처음 담임을 맡았을 때의 학생 수가 36명 정도였다. 그리고 교직을 마무리할 때의 학생 수가 24명이었다. 아마 올해는 20명 이하인 학급도 분명히 생겼을 것이다.

  사람이 많던 시대의 교육은, 많은 아이들 중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사회에 꼭 필요한 곳으로 배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을 것이다. 각종 시험으로 학생들을 변별하고 급을 나누는데 치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도 성장기의 나라에서, 그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필요했을 것이고, 교육도 그 기준을 세우는데 이바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누구도 우리 사회의 인구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내놓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사람 자원이 풍족했던 시대를 살았던 우리가, 사람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대를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현행 유지는 악화를 내버려 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뻔히 다가올 악화를 방치하는 것을 과연 정의라 부를 수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나는 앞으로의 교육은 우수한 학생을 선별하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든 학생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질 미래의 사회에서 낙오되고 방치되는 아이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아이를 모두의 아이처럼 보살피고, 그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다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출산율이 낮은 이유를 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불안을 걷어내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으로 본다. 내 자식이, 불안한 사회에서 불안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들이 행복하게 도와줄 수 있는 힘이 우리 사회에 있다고 사람들이 믿는다면, 출산율은 저절로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대학 진학률이나 의대 입학률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난 부끄러웠다. 명문대에 많이 진학하면 명문고등학교가 되는 것인지, 내가 맡은 학급에서 의대를 많이 보내면 난 유능한 교사인 것인지. 생각해 보면 솔직히 난 그들에게 해준 것이 많지 않다. 그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낸 것이지, 내가 그 학생의 성공에 어찌 숟가락을 올릴 수 있겠는가.

  그보다 더 부끄러웠던 것은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었던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학교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잃은 학생에게,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뭔가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니라는 뻔한 말을 해줄 수는 없었으니까. 기껏해야 학업중단숙려제 등을 활용해서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해 볼 기회를 준다거나, 학업 부적응 학생들을 위해 교육청이 마련한 학교를 소개해 준다거나 하는 정도였고,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마저도 거부했다. 그러면 더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교육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수능이 얼마만큼 변별력을 지니고 있는지, 얼마나 학생들을 잘 등급을 매겨 분류하는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프고 힘들고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학교에 많은지에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학교 생활을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교육 정책을 발표하고, 사람들이 그런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토론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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