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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수의힘 Jul 02. 2023

명함을 팠습니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작년에 크몽에서 의뢰받은 분과 잠깐 통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전화 주신 분께서 "혹시 광주 사세요?"라고 물어봤다. 사투리를 듣고 알았다고 하시기에 "네. 광주 북구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어 저희는 광산구입니다. 언제 기회 되시면 만나 뵙고 일을 의뢰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하셔서 "저는 크몽에서만 일을 하고 직접 대면해서 일을 맡기는 좀 어렵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라고 답하는 상대방의 말에서 약간의 섭섭함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 당시엔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신분이 노출되면 상당히 피곤해질 것이 뻔했으니까. 가급적이면 학교에 피해를 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학기가 마감되는 날까지는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싶었다.


  한참이 지나 잊고 있었는데, 또 전화가 왔다. 작년에 크몽에서 거래했었다는 말로 전화를 시작하신 그분은 전문가분이 꼭 일을 맡아주셨으면 좋겠다며, 회사에 와서 자신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꼭 들어달라고 했다. 요즘 세상이 참 흉흉해서 겁이 좀 나기는 했지만, 들은 내용이 내가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 같아서 고민하다 결국 찾아가기로 약속을 했다.


  집에서 일을 하다 일하던 복장 그대로 그분의 회사를 찾아갔는데, 들어가자마자 옷을 잘못 입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찾아간 회사는 큰 건물의 한 층을 그대로 쓰고 있는 큰 회사였으며, 업무를 보고 있는 직원들이 매우 많았다. 운동할 때 입는 반팔 티셔츠와 그래도 다행히 반바지가 아닌 게 다행인 조거 팬츠를 입은 내가 매우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회사의 회의실로 들어가서 부담스럽게 직원 분이 주시는 커피를 얻어먹으며 필요한 프로그램에 대해 프레젠테이션까지 받았다. 회의실에 빔프로젝터에 PPT를 보고 있으니 다시 학교로 불려 나온 기분이었다. 정말 부끄럽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편한 마음으로 남의 회사에 방문했구나 싶었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제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서 대표님과 견적협상은 잘 마쳤다. 


  협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그 회사의 본부장님이 필요한 연락은 자기에게 하면 된다면서 명함을 주셨다. 명함을 받았으면 내 명함을 드리는 게 예의일 텐데, 안타깝게도 난 명함이 없었다. 왜 내 사업을 2년 넘게 하면서 명함 만들 생각은 못했는지, 정말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본업을 그만두어서 지금 하는 일이 본업인데도 난 아직도 부업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던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싶었다. 아직도 난 이 일을 부업처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전심전력으로 내 개인사업을 키워도 모자랄 형국에 이처럼 안일한 생각이라니. 이 날, 낯선 업체 하나를 방문한 경험은 안일해졌던 나 자신을 반성하기엔 충분한 경험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난 명함을 하나 만들었다. 내가 일하는 크몽에서 명함을 제작하시는 분들 중에 평이 좋은 분을 선정했고, 내 크몽 이미지를 명함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렸다. 이것이 나의 사업이다.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알리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 명함이 집으로 왔다. 내 크몽 페이지를 그대로 명함으로 만든 이 명함을 보고 있으니 드디어 내 인생의 새로운 막이 시작했다는 자각이 생기는 것 같다. 보잘것없는 규모이지만, 나 아니면 누구도 조종할 수 없는 내 배가, 넓은 바다에 첫 노를 젓는 것 같은 기분을 내 명함을 보며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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