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부끄럽지 않게 살아볼까요.
요즘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화가 많이 늘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비대면으로 하는 일이라서 면전에서 실수할 일은 없어 다행입니다. 입으로 한 두 마디 튀어나오던 나쁜 말들이 요즘은 프로그램에 오류가 터질 때마다 나옵니다. 또는 프로그램의 기능과는 상관없는 사소한 수정을 고객이 요구할 때도 나쁜 말이 튀어나옵니다. 아내는 요즘 부쩍 화가 늘어난 것 같다고,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은 것 아니냐고 물어봅니다. 확실히 혼자 일하면서 화가 늘어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온갖 나쁜 말들을 하면서 프로그램을 수정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용하는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겨서 좀 고치려고 하면 연락이 오고, 채팅이 오고, 전화받다가 다시 수정하려고 하면 또 전화가 오는 악순환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또 다른 수정 요청까지 들어오면 나쁜 말을 안 하고는 배길 수가 없습니다. 최대한 친절한 개발자가 되고 싶었는데, 부끄럽기만 한 요즘입니다.
문득 교사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토요일 자습 시간이었고, 기숙사 학생들을 감독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무슨 이유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짜증이 많이 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물론 학생들 때문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생들과 관련 없는 학교의 다른 일 때문이었을 겁니다.
자습이 끝나갈 무렵, 딴생각을 하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학생들은 주섬주섬 가방을 싸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끝나기 10분 전 정도였습니다. 이전에 기숙사 학생들이 너무 빨리 점심을 먹으러 와서 식당 선생님들이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저는 학생들에게 가방 다시 풀고 책을 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연히 학생들은 들은 채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가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화가 뇌를 그대로 통과해 폭발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10분도 못 참으면서 무슨 수능을 보겠다고 해! 당장 자리에 앉아!"라고 외쳤던 것 같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를 느꼈습니다. 평소 화를 잘 내본 편이 아니어서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더 어찌할 바를 몰라 그만 교실을 뛰쳐나와버렸습니다. 그리고 교실 밖에서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때 느낀 감정은 더 이상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에 이리 화가 난 것일까. 왜 시간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하지 못했을까. 학생들에게 인정받는 친절한 교사이고 싶었는데, 왜 그 순간에는 그 마음을 잊어버렸을까.
어렸을 땐 윤동주 시인의 시구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교사를 꿈꾸었습니다. 교사가 된 후, 하루도 부끄럽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교사로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지금은 또 개발자로 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루하루 부끄럽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운 요즘입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별 헤는 밤, 윤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