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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섭 Jan 08. 2019

DHP는 어떤 스타트업을 찾는가

우리의 심사 기준과 선호하는, 그리고 선호하지 않는 스타트업

필자는 외부 인터뷰 등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DHP)가 무엇을 하는 조직이냐? 하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항상 동일하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로서 다음과 같은 크게 네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이다. 바로 발굴, 육성, 연결, 투자이다. 


요약하자면 유망한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발굴하여, 시간과 리소스를 들여서 육성하고, 의료계/투자자/규제기관 등의 이해관계자들과 연결해주며, 지분 투자를 통해서 시드 펀딩을 제공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헬스케어/의료 분야라는 것 때문에 매우 특수해지는 영역들이 있으나 (예를 들어, 규제, 임상연구, 수가, 의료기관 연계 등등), 크게 본다면 다른 엑셀러레이터가 하는 업무와 다르지 않다. 




DHP 발굴의 첫 관문: DHP Office Hour 


이 네 가지 활동 중에 가장 중요하고도,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역시 '발굴'이다.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해야만, 그 기업에 투자하고, 연결하고, 육성할 수도 있다. 엑셀러레이팅은 창업과 달리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외부의 전문가들이 투입되어 자문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고 주인공은 해당 스타트업이며, 특히 해당 스타트업을 창업한 공동창업자와 대표님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즉,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016년에 창업한 DHP는 올해 들어서 4년 차에 접어든다. 아직까지 많이 부족하지만, 해마다 조금씩 더 많은 팀들을 검토하여 투자하고 있다. 투자 건수로 따지면 2016년 1개, 2017년 2개, 2018년 5개로 나름대로(?)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또한 DHP와 만나는 첫 번째 공식적인 관문인 Office Hour에 초청되는 회사도 해마다 양적, 질적으로 향상되고 있으며, Office Hour에 초청되기까지의 경쟁률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매달 1회씩 2-3팀의 유망한 초기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초청하여, 한 시간 정도씩 무료로 자문해드리는 DHP Office Hour를 2016년부터 거의 매달 빠지지 않고 진행해오고 있다. 여기에는 DHP의 파트너, 자문가, 외부 전문가 등 많을 때는 40명에 가까운 의료 전문가들이 모여서 (절반 이상이 의사이며, 나머지 절반은 필자와 같은 비의료인 전문가 및 투자 전문가 등이다) 오직 하나의 스타트업만을 위해서 집중적인 자문을 해드린다. 이런 자리는 한국에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고,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Office Hour는 DHP가 스타트업에게 무료로 자문을 해드리는 자리임과 동시에, 스타트업과 DHP가 서로 첫 번째 상견례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심사'가 첫 번째 목적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DHP도 이 스타트업을 유심히 살펴보고, 또 (매우 중요하게도)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DHP가 좋은 엑셀러레이터인지, 자기와 맞을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를 살펴보게 된다. 여기에서 스타트업과 DHP가 '서로' 마음에 든다면 이후 IR과 투심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현재 DHP 포트폴리오 8개 (곧 9개가 된다) 회사는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DHP의 심사 기준


필자가 항상 푸념하듯이 한국은 미국만큼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전체 풀(pool)이 크지 않다. 필자가 2017년 Rock Health Summit에 참석하였을 때, Rock Health에서 1년에 800개의 초기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검토하여 그중에 1%에 투자한다는 통계를 보고 경악했던 적이 있다. 사실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 투자하기 위해서는 일단 스타트업의 풀 자체가 일정 수준 이상 확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DHP는 이 문제도 해결하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이 부분은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하자)

Rock Health는 1년에 800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검토해서, 그중 1%에 투자한다.

한국은 절대적인 숫자로 따진다면 결코 미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DHP Office Hour에 지원하거나 파트너들의 추천을 받는 팀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DHP도 초창기에는 한 달에 세 팀의 초청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후보의 기근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여러 팀 중에 골라서 초청할 정도는 되며, 그 경쟁률은 더 올라가고 있다. (지원은 dhp@dhpartners.io 로 사업 소개 자료를 보내주시면 된다)


지난 4년 동안 Office Hour와 여러 번의 IR 및 투심을 거치면서 DHP도 나름의 심사 기준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기준을 처음부터 명문화해놓고 진행한 것은 아니었으나, 자연스럽게 우리가 어떠한 팀을 선호하며, 어떠한 팀에 더 끌리는지에 대해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생겼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기준은 단순히 Office Hour에 초청할 것인가의 여부, 투자할 것인가의 여부를 포함하여, 해당 스타트업을 어떠한 방향에서 평가하고, 어떠한 코멘트를 주는가까지도 포괄한다.


특히 DHP Office Hour에 초청되기 위해서는 사실 대표 파트너인 필자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일종의 편집자(editor), 혹은 문지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논문을 출판하기 위해서 저널에 투고를 하면, 일단 편집자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심사위원들의 리뷰라도 받을 수 있다. DHP에 지원하는 이메일도 결국에는 모두 대표인 필자가 검토하고, 필자 선에서 그냥 커트할지, 아니면 추가적으로 다른 파트너들과 더 논의해볼 필요가 있을지를 결정한다. 이러한 논의를 거쳐서 결과적으로 어떤 기업을 Office Hour에 초청할지도 필자가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다만 투심에서 이 회사에 투자할지는 모든 파트너들이 함께 협의하여 결정하며, 필자도 여러 파트너 중 한 명으로서 하나의 투표권만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DHP 파트너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 다소 필자의 사견이 포함되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어떠한 기준으로 스타트업을 바라보고 Office Hour에도 초청하는지에 대해서 정리해서 공유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DHP는 어떤 스타트업을 찾는가


다소 서두가 길었지만, 이 글에서는 DHP가 어떤 스타트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어떠한 스타트업을 선호하고, 또 어떠한 점을 주의 깊게 보는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혹시 DHP에 관심이 있거나, 지원을 원하는 회사가 있으면 참고하시면 좋을 것이다. 혹은 스타트업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DHP가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돌아가는지에 대해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이 기준을 모두 만족한다고 해서 반드시 DHP가 투자한다는 것도 아니며, 이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해서 Office Hour에 초청되지 못한다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것들은 (모든 글이 그러하듯이) 필자의 개인적인 선호가 좀 더 반영된 것이지만, 대부분의 기준들은 우리 DHP의 파트너들이 그동안 여러 회사들을 살펴보면서 만들어진 전반적인 성향이 반영된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라는 회사 이름에 아예 들어가 있듯이, DHP는 헬스케어/의료, 특히 그중에서도 디지털 헬스케어(digital healthcare), 혹은 디지털 의료(digital medicine) 분야에 집중한다. 쉽게 말해서 IT 분야와 헬스케어/의료 분야가 융합된 분야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서, 스마트폰 앱, 가젯, 웨어러블, 인공지능, 블록체인, AR/VR, 클라우드, 3D 프린팅, 유전정보 분석 등등의 기술을 헬스케어 및 의료 분야에 접목시킨 스타트업이어야 한다.


DHP는 디지털 헬스케어가 의료의 미래를 열어갈 (유일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핵심적인 분야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분야에 집중하며, 의료/헬스케어 분야라고 하더라도 이에 해당하지 않으면 관심 영역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의료기기, 신약 개발하는 바이오벤처, 치기공, 한의학 등은 우리가 보지 않는다. 이러한 분야는 이미 기존의 다른 벤처투자가들이 전문적으로 하고 있어서 DHP만의 차별성을 가지지 못하거나, 우리가 잘 모르는 영역이다. 


한 가지 DHP 내부적으로도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일반적인 건강관리, 즉 '웰니스(wellness)'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이 영역은 의사가 해야만 할 정도로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건강관리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많이 받는 사업계획서 중 하나로 '건강 기능 식품' 관련 영역이 있다. 이러한 건기식은 ('기능 식품'이라는 것 자체가 의학적으로 현저한, 유의미한 효능은 없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사업적으로는 유의미할 수 있으나, 의학적인 의미는 다소 떨어진다. 


기존에 DHP에서는 이런 부분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향후 투자 범위를 조금 더 넓힌다는 의미에서 이런 부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웰니스로 시작했다가, 의료 서비스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눔(Noom)이다. 처음에는 식단 관리하는 다이어트 앱으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당뇨병 예방으로 메디케어 수가까지 받으므로 웰니스에서 의료 서비스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초기 버전의' 눔이 DHP에 지원했다면 관심을 가졌을까?" 하는 것이 필자가 작년 연말 내부 반성 회의에서 던졌던 질문이었다. 



초기 스타트업이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이 '분야별' 기준이었다면, 이 부분은 '단계별' 기준이다. DHP도 엑셀러레이터이므로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를 한다. 특히, DHP는 극초기 투자일수록 더 선호한다. 실제로 DHP의 포트폴리오 중에는 DHP의 투자와 함께 법인을 설립했거나 (ex. 서지컬 마인드, 닥터 다이어리, 메디히어), 법인 설립 후 1달 정도만에 투자를 받은 (ex. 3billion) 스타트업이 많다. 필자는 항상 내부 파트너/자문가 및 주변에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 "더 키워서 지원/추천하겠다고 시간 보내지 말고, 지금 당장 지원/추천해달라"는 것이다. (제발 그렇게 해주시라.)

내부 공유 자료 중 일부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스타트업의 방향성에 관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헬스케어 스타트업은 크든 작든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 가장 큰 실수는 시장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필요 없는 물건을 열심히 만들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대표가 시장을 잘 몰라서일 수도 있고, 시야가 좁거나, 자신의 기술에 매몰되어 있거나, 아직 리얼리티 체크가 덜 되어서 그럴 수도 있다. 


DHP는 초기부터 회사와 함께 방향을 만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경우에는 기술만 들고 오면 아이템을 함께 찾아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서지컬 마인드의 경우,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VR 기술을 활용할 분야를 '백내장 수술 시뮬레이터'로 잡은 것이 그러하다. DHP는 실제로 진료 현장에서도 필요하고, 규제/인허가 여건도 고려하고, 돈을 낼 사람도 있고, 환자들도 필요한 니즈를 '여러 명'의 의료 전문가들이 함께 찾아주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도 완벽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진료실이나 수술방에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이나, 혹은 소수의 특정 의료인의 의견에 매몰될 위험이 적다.



기업 가치가 너무 높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부끄럽지만 DHP가 투자 여력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기업의 밸류는 엑셀러레이터, 벤처캐피털, PE를 막론하고 모든 투자사들이 당연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는 요소이다. 어느 투자사든 (손정의 회장의 비전 펀드 정도 되지 않는 다음에야) 무한대의 펀드를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저마다 주력하는 기업 가치의 범위도 대략적으로 정해져 있다. 


다른 글에서 언급한 바도 있지만, DHP가 가지고 있는 펀드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여기에는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곧 작은 규모의 펀드를 하나 만들게 될 예정이기는 하나, 다른 초기 투자자처럼 한 번에 5억, 10억을 투자할 여력이 (아직은) 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기껏해야 1억 정도의 금액을 투자하는 정도일 것이다. (사실 DHP가 제안하는 가장 큰 밸류는 의료 전문성과 네트워크이지, 투자금이 아니다. 이것이 다른 엑셀러레이터나 투자사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돈만 필요하다면 다른 투자사를 찾으셔야 한다)


또한 DHP가 아무리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회사인 이상 지속 가능할 정도의 수익을 장기적으로 올려야 한다. 현재 DHP의 유일한 수익모델은 스타트업에 대한 '장기' 지분투자이다. 다른 초기 투자사들과 마찬가지로 최소 5%에서 10% 정도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초기 투자사의 지분 확보는 너무 적어도, 혹은 너무 많아도 서로에게 좋지 않다. 5-10% 정도가 가장 적정선이라고 본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가진 펀드로 투자해서, 적정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기업가치의 범위가 대략 나올 것이다. (앞으로는 바뀔 수도 있으나) 현재의 DHP는 기업가치 20억 이상의 기업은 거의 투자하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그 밸류 이상의 기업의 경우, 자금 여력이 안되거나, 투자하더라도 지분을 너무 적게 확보하기 때문에 우리가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할 동기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참고로 스타트업 하나 제대로 육성하려면 정말 엄청난 시간과 리소스가 들어간다. 


요즘 시장에서 스타트업의 밸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최근에는 (DHP 입장에서는 아쉽게도) 사업계획서만 가지고도 30억, 40억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스타트업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그것이 적정 밸류이든 아니든, 시장이 오버 슈팅하고 있든 아니든, 일단 DHP는 현실적으로 이 정도 밸류의 스타트업은 투자하지 못한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2018년에도 사실 이러한 스타트업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중에는 DHP의 투자를 꼭 받고 싶어 하는 곳도 있었고, 반대로 DHP 쪽에서 너무 마음에 들어서 꼭 투자를 하고 싶은 회사도 있었다. 이런 회사를 놓고 필자도 어떻게든, 어떤 식으로든 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제는 이런 스타트업을 보면 아쉽더라도 그냥 깔끔하게 놓아드리고, 다른 기회를 기다리며 훗날을 기약해야 한다는 법을 배웠다.


DHP 입장에서, 이러한 기회까지도 잡기 위해서는 펀드 사이즈를 더 키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큰 규모의 펀드를 만드는 것에 실패했다. LP를 구하려면 트랙 레코드(track record)가 있어야 하는데, 트랙 레코드를 쌓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닭과 달걀의 문제다. 또한 필자의 모난 성격 탓에, 단순한 '쩐주'나 업계에서 평판이 좋지 않은 회사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있다. (이런 돈이 스타트업에 들어가면 장기적으로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헬스케어 바닥에서는 더 그러하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능력과 비전을 믿어주는 소수의 LP로 작은 펀드라도 만들어서, 꾸준하게 트랙 레코드를 쌓아가려고 한다. 어차피 우리가 1년에 수십 개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할 여력도 되지 않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펀드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느리지만 꾸준히 가다 보면, 우리도 적정한 규모의 펀드를 만들면서 조금 더 원하는 대로 투자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DHP가 그리는 헬스케어 전문 초기 투자 펀드의 구조



'큰 문제'와 명확한 '니즈'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위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했다면, DHP Office Hour에 초청될 '필요' 조건은 모두 갖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니즈의 파악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필요한 상품,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사실 필요한 것을 만들어도 돈을 벌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인 분야가 의료/헬스케어다. 필요한 것을 만들어도 돈을 낼 주체가 없거나, 규제에 걸리거나, 수가를 받지 못하거나, 수가를 받아도 원가도 보전이 안되거나, 이해관계자를 적으로 돌리거나, '국민 정서법'에 걸리는 것이 의료 분야다. 하지만 이마저도 '필요한' 것을 만들고 있는 경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니즈는 결국 '문제의 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명확히 존재하는 문제,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 해결했을 때 큰 경제적인 효용과 의학적인 혁신이 발생하는 문제를 골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 현장, 환자, 소비자, 의료전달체계 등의 구조적 문제, 의학적 문제, 모순 등을 파악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누군가'가 '돈을 낼만한' 문제여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 분야는 아주 좋은 아이디어인데도, 정작 돈을 낼 주체(payer)가 없는 경우가 매우 많다.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거꾸로 필자에게 '그러면 당신이 해보라'라고 하면 나도 할 말이 없기도 하다. (내가 이걸 잘했으면, 직접 창업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DHP가 아니라 다른 어떤 투자자의 투자를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 분야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제대로 된 투자자라면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필요 없는 것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너무 많다. 더 정확하게는, '누군가 돈을 낼만큼 충분히 필요하지는 않은 것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너무 많다.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고 싶지만, 특정 회사에 대한 직접적인 디스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함을 독자들은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당연히 '우리는 필요 없는 것을 만들어야지' 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시장에서 보기에, 혹은 의료 전문가들이 보기에 한국의 진료 현실에 맞지 않거나, 필요하지만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쓸 수가 없거나, 니즈가 있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않거나, 니즈가 있음에도 돈을 벌 수 없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이러한 점이 헬스케어 창업뿐만 아니라, 투자도 어렵게 만든다. 


또 한 가지 빠뜨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최소한 의학적으로 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종 의학적으로 '틀린' 문제를 풀려고 하거나 (다른 것이 아니라, 그냥 틀린 것이다), 의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당연히 DHP의 선택을 받지 못하거니와,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 사업은 하시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린다. 단순히 돈을 못 버는 정도가 아니라, 기술적, 윤리적으로 잘못되었고, 궁극적으로 환자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이다. (최근 흥미롭게도 유명 벤처캐피털이나 투자사에서 '의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해결책에 큰돈을 투자하는 곳이 더러 있다. 전문성의 부족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본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유연해야 한다. 

'큰 문제'와 '명확한 니즈'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사실 DHP는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엑셀러레이터이다. 우리는 일반적인 벤처캐피털처럼 이미 만들어진 아이템과 사업모델을 일방적으로 평가하고 투자하고 이후에는 그냥 지켜보는 곳이 아니라, 초기부터 개입해서 그 아이템과 사업모델을 함께 만들어간다. 그것이 우리 DHP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자 책임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초기' 스타트업을 선호한다고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잘못된 가설이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아이템으로 너무 많이 진행하면, 피봇팅을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경우, 외부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현업의 전문가들을 연결해주고 그 문제와 니즈에 대해서 리얼리티 체크를 하게 해 준다. DHP 내부에 전문가가 많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의료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경우 DHP가 자랑하는 외부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한다. 


예를 들어, 한 포트폴리오 회사의 경우, 제약회사를 대상으로 한 B2B 사업모델을 함께 만들었으나, 이 사업모델의 기반 가설이나 타당성에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외국계 제약사 임원 및 CRO 대표 등을 연결해드린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그 BM은 사업성이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었으며, 해당 스타트업은 조기에 피봇팅을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바로 '유연성'이다. 많은 경우 스타트업의 창업자는 자신의 아이템과 사랑에 빠지고, 또 사실 사랑에 빠져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칠 경우에는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에게 가지고 오는 아이템 자체가 제대로 된 방향성이 아닐 수도 있고, 우리와 함께 만들어가는 아이템이 결국 (상기의 사례처럼) 옳은 방향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때가 있다. 사실 많은 스타트업이 여러 이유로 처음의 사업계획서가 계획대로 실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 혹은 창업 팀의 외부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환경의 변화에 빠르고 적절하게 대처하며, 필요한 경우 빠르게 피봇팅을 할 수 있는 '유연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유연한 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적절한 수준의 자존심과 열린 태도를 가진 대표를 찾는 것이 참 쉽지 않다. 어떤 경우는 조금만 이야기를 해보면, 자신감이 너무 과해서인지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나 조언이 모두 튕겨져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면 필자는 속으로 '그렇게 잘 아는데 왜 우리의 조언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하고 절로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후속 미팅으로는 거의 이어지지 못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경우는 겉으로 드러나서, 쉽게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차라리 낫다.


또 다른 경우가 더 문제인데, 겉으로는 조언을 잘 알아듣는 것 같고, 실행으로도 빠르게 옮길 것 같지만, 결국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유형이다. 앞에서는 우리 이야기를 분명히 귀담아듣는 것 같았는데, 다음에 만나보면 완전히 엉뚱한 일을 했거나,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된다. 이 경우는 멘토들의 조언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그 조언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역량이 없어서, 혹은 리소스가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유형은 사실 함께 일을 해보기 전에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여튼 이런 경우도 우리의 노력과 기여가 헛수고로 돌아간다. 



팀 내 의료 전문가의 존재 여부

이 부분 역시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는 팀을 볼 때에 팀 내부에 의료 전문가가 있는지, 몇 명이 있는지,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주의 깊게 본다. 이는 DHP가 얼마나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기여를 하기는 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일단 팀 내부에 의료 전문가가 없는 경우를 DHP를 가장 선호한다. 이 경우에 우리가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경우, 방향성에 수정을 가하거나 피봇팅을 하기도 쉽다. 반대로 팀 내부에 의료 전문가가 부족하지 않은 경우 (예를 들어, 병원에서 스핀오프 하여 이미 다수의 의사가 관여하고 있는 경우)에는 DHP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다. 물론 규제, UX, 후속 투자자 연계, 더 큰 네트워크 등을 우리가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전자 (즉, 의료 전문가가 없는 경우)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DHP가 덜 필요할 수밖에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팀 내에 '한 명'의 의료 전문가가 있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이 분이 이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관찰한다. 가장 좋지 않은 경우는 이 '한 명'의 의사에게 회사가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경우이다. 특히 이 의사의 기막힌 아이디어에서 회사가 출발했고, (보통 파트타임임에도) 지분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이미 (의료를 잘 모르는) 대표의 전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경우라면, 아무래도 DHP에서 의료 전문가 '집단'이 멘토링을 하기에 여러모로 껄끄럽고, 그쪽에서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했지만, 한 명의 의료 전문가의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것은 사실 많이 위험하다. 의사라고 모두 옳지 않을뿐더러, 같은 진료과의 의사라고 하더라도 특정 아이템에 대한 시각차가 큰 경우도 많다. 사실 DHP의 묘는 여기에 있다. 우리 Office Hour에 와보면 서로 다른 진료과를 전공한, 그리고 대학병원, 개원가, 전문병원, 스타트업, 보험사, 제약사, 로펌 등 각기 다른 요소에서 일하는 의료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난상 토론하면서 서로 배우고, 답을 찾아가는 매우 흥미로운 과정을 볼 수 있다. DHP가 지향하는 바도 이러하다. 하지만 이미 한 명의 의사에 의존도가 높은 곳이라면 이러한 장점이 여러 이유에 의해서 현실적으로 작용하기가 쉽지 않다. 



기타 몇 가지 추가 기준들 

생각보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슬슬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앞서 이야기한 것들은 DHP의 파트너들이 전반적으로 (사실은 어느 투자사라고 하더라도) 공통적으로 보고자 하는 기준일 것이다. 여기에 아래와 같은 조금 더 세부적이고 어쩌면 마이너한 기준들을 추가하고 싶다. 이 기준들은 필자의 개인적인 성향이 조금 더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이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가능하기만 하다면 되도록 많이 충족시킬수록 좋을 것이다.


해당 아이템에 개인적으로 강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창업자 본인이나 가족과 연관된 히스토리 등)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의료의 혁신이나 환자의 삶을 개선시키려는 큰 동기가 있다.

의학적으로 의미 있고, 크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시장성이 있고, 특히 확장 가능(scalable)한 아이템. 

확장 가능한 방향은, 얕고 넓은 것보다, 좁고 깊은 쪽으로.

해외로도 확장 가능하다면 더욱 좋다. 한국 시장은 너무 작다.

"누가 돈을 낼 것인가?"의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 

(잠재적) 경쟁자와의 차별성이 뚜렷해야 한다. 

진입 장벽(entry barrier)이 명확해야 한다. 즉, 남들이 따라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국내 의료 현실(규제, 수가, 의료전달체계, 구조적 문제, 정치적 이슈 등)을 잘 파악하고 있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충족시키거나, 최소한 적으로 돌리지는 않아야 한다.

그리고 정직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과장하거나 꾸며내지 않아야 한다.


이 긴 글이 우리 DHP가 어떠한 스타트업을 찾고 있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평가하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모든 조건을 갖춰야만 DHP의 투자와 엑셀러레이팅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부족한 점을 함께 채워나가고, 방향성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엑셀러레이터로서 DHP의 역할이기도 하다. DHP는 항상 좋은 팀과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목말라하고 있다. DHP와 함께 하고 싶은 팀, Office Hour에 참여하고 싶은 팀은 언제든지 dhp@dhpartners.io 로 사업 소개자료를 보내주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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