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것은 지킵시다.
벤처투자자로서 사업계획서를 많이 받다보니,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된다. 사실 꽤 황당한 경험을 하는 경우들도 있다. 투자자의 입장에서 어떤 경우를 선호하지 않는지, 더 나아가 어떤 경우가 딜브레이커인지를 한번 정리해본다.
- ‘투자 바랍니다’, ‘검토해주세요’. 정도의 제목만 띡 오거나. 메일도 이런 내용의 한 두 줄이 내용의 전부인 경우.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내용만 있는 경우가 은근히 적지 않다. 당연히 더 검토하지 않는다.
- 다짜고짜 무조건 만나자고 하는 경우. 만나서 설명해주겠다고. 일면식도 없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만나줄 이유가 전혀 없다. 자매품으로 무작정 '전화주세요' 하는 경우도 있다. 역시 전화할 이유가 전혀 없다.
- 정부과제 심사 등 다른 행사나 프로그램에 제출했던 양식을 그대로 보내는 경우. 특히 대부분 이런 파일은 hwp 로 되어 있다. 참고로 내 경우는 hwp 로 보내면 안 열어보거나, 열어봐도 짜증이 난다. 심지어 한 5년 전의 정부 지원 사업에 제출했던 hwp 파일을 그냥 보내신 분도 있었다. (물론 팀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과제 지원 자료라도 제발 보내달라고 해서 받아 본적은 있다. 그 팀에는 투자를 했음)
- 기본적인 맞춤법에 (실수 정도가 아닌) '심각한' 오류가 있거나, 우리 회사 이름, 내 이름에 철자 오류가 있는 경우. 그만큼 철저하지 못하거나,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있다는 뜻도 된다. 나중에 고객 이름도 틀리면 어떡하나.
- 거짓말을 하는 경우. 사업계획서를 받으면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레퍼런스 체크를 한다. 예전에 한 스타트업의 사업계획서를 받았을 때 내가 잘 아는 후배가 멤버로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연락했더니 “저 그런 팀이랑 창업하기로 한 적 없는데요??” 했던 적이 있다. 이 경우 문제가 좀 커졌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좁고, 우리의 네트워크가 생각보다 넓다.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가지는 않지만, 투자 검토는 거기서 끝이다.
- 투자사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찾지 않고 보내는 경우. 우리는 회사 홈페이지만 찾아봐도 (아니 이름만 봐도..) 디지털 헬스케어에만 투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전혀 다른 분야, 핀테크, 모빌리티, 패션, 심지어는 요식업 사업 계획서를 보내는 분들도 있다. 당연히 서류에서 걸러진다.
- 대표가 연락을 주지 않고 다른 직원이 연락할 경우. 투자 유치와 같은 회사의 명운이 달린 큰 결정에 의사결정자와 이야기할 수 없으면 진행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과장, 차장 급의 직원이 연락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가 대표의 역할을 다 하지 않는 회사에 투자할 이유가 무엇인가?
- 상소리를 하거나 비속어를 쓰는 경우. 믿기지 않겠지만 이런 경우가 있었다. 이 회사는 현재 업계의 주목을 받으며 투자 유치에 성공했지만, 우리가 투자하지 않은 것이 전혀 아쉽지 않다. 친한 투자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검토 거절 메일에 답장으로 욕을 써서 보내는 창업자들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