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내 후드 모자에 너의 인생을 넣어준 J에게

by 임준형

모든 것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어쩌면 옷 한 벌 챙기지 않고 가출을 감행했던 그날 아침 훨씬 이전부터, 난 이미 집을 나설 결심을 했을지도 모른다. 내 의사에 반하여 고등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그날이었을까. 아니면 학교 곳곳을 숨어 다니다 마치 저물어 가는 들판에서 갈 길 잃은 어린 짐승처럼 힘없이 끌려왔던 그날이었을까.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학업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으로 내게 주어진 자유를 감당해내지 못한 탓인지 꽤나 자주 아팠다. 잔병치레하느라 학교에서 30분 거리의 시내 병원을 매일 오갔고, 당연히 그만큼 수업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머리 좋다고 소문난 친구들 사이에서 수업을 듣지 못한 내가 좋은 성적을 받을 리 만무하였다. 게다가 고등학생의 풋풋한 첫 연애가 부모님 눈에 좋게 보이지 않았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사실 첫 연애인지, 아니면 나의 첫 절절한 짝사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공부 괴물들 사이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잦은 병원행으로 수업 일수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아니면 자유의 기쁨을 만끽하느라 책임의 무게를 잊은 나를 보며 대책이 없다고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부모님은 그런 이유들로 아들의 휴학을 결심하셨을 게다. 돌이켜보면 엄연히 폭력이었다고 생각되나, 그때는 내게 저항할 힘이 없었다. 어느 날 불시에 강원도까지 찾아오신 부모님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휴학계를 제출하시곤 전화를 걸어오셨다.

부 : “휴학계는 이미 제출했다. 짐 챙겨서 가족 숙소로 와라. 기다리고 있다.”

나 : “싫어. 나 안 나가.”


정말로 학교를 떠나기 싫었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뚫고 체육관으로 향하던 아침도, 처음으로 알아버린 생활한복의 편리함도, ‘English Violation’이라고 외치던 두루마기를 걸친 선배들도, 공강 시간 동기들과 마룻바닥에 누워 음미하던 강렬한 햇살의 맛도, 그리고 소등 시간이 지나서까지 랜턴을 켜고 공부하던 열정 어린 눈빛도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을 피하려 기숙사를 나와 도망간 사이, 기숙사 짐은 부모님이 전부 정리하셨다. 하필 산골짜기에 있던 학교는 정문 말고는 도주할 샛길도 없었고, 그렇게 나는 무기력하게 부모님에게 붙잡혀 고향으로 끌려 내려갔다. 울고 싶었지만 울지 않는다. 울면 지는 거니까, 나는 돌아올 테니까. 뒷좌석 창문으로 고막을 찢어놓을 것만 같은 바람 소리가 들렸고, 그날따라 유독 강원도 산골의 소똥 냄새는 고약했다.


한 달 뒤, 건강 관리와 대학 입시 준비를 이유로 부모님은 자퇴원을 제출하셨다. 형식적인 서명 요구에 동의한 것이 두고두고 한으로 남아 있다. 아마 기억을 되살려 보건데, 자퇴원에 서명하며 가출을 결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밝은 밤이 지나가고 새벽 태양이 떠오를 때쯤, 나는 억울함과 속상함을 내비친 쪽지 한 장을 책상 위에 놔두고 읽고 싶은 책 두 권과 속옷, 양말, 그리고 현금 3만 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부모님 도움 없이 알아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후 금의환향하는 청춘의 나를 꿈꿨다. 폭력에 대한 소심한 반항이었으나, 기개만큼은 혁명가의 그것을 가슴에 품고 집을 나선 셈이다. 하지만 제기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당시 휴대전화도 없었던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집에서 고작 30분 거리의 백화점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지하 1층에 있는 서점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 행복했다.


문제는 밤이었다. 밝을 것만 같던 나의 미래가 노을과 함께 사라졌고, 짙은 어둠이 내 눈을 가렸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는 고팠고, 저녁이 깊어지는데 잘 곳이 마땅치 않았다. 노숙인들처럼 벤치에서 잠들자니 아무래도 무서웠다. 난간 끄트머리에 앉아 한참 고민하다 생각난 것이 바로 가장 친한 중학교 친구 J군이었다. 연락하지 않은 지 몇 달 되었지만 다행히 휴대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껌 하나를 사서 동전을 만든 뒤, 주변 공중전화로 가 조심스레 그의 번호를 눌렀다. 몇 차례 통화음이 울리더니 익숙하고 편안한 J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J : “여보세요.”

나 : “나 준형. 통화 가능해?”

J : “야, 니 무슨 일 있나. 자퇴했다고 소문 다 났던데. 잘 지내나? 무슨 일인데?”

나 : “나 가출했어. 다름이 아니라, 내가 잘 곳이 없는데 오늘 하루만 너희 집에서 신세 질 수 있을까? 사정은 만나서 설명할게.”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J : “흠.... 5분 뒤에 다시 전화줘. 엄마한테 얘기해볼게.”

5분 뒤 전화를 걸어 받은 친구는, 가족들이 모두 있어 집에서 자는 건 어렵다고 했다. 대신 어머니께서 찜질방에 얘기하실 테니, J와 둘이 하루만 찜질방에서 자라고 하셨다. 할렐루야! 금의환향을 위한 위대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J군 어머니께서 찜질방 비용과 용돈까지 주신 덕분에, 5성급 호텔 부럽지 않은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찜질방 필수 코스인 구운 달걀과 식혜를 시작으로, 뜨끈한 바닥에 온몸을 지지며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언제 잠들고 언제 깼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자퇴를 하고 한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다가 오랜만에 만난 인간이자 친구인 J군 덕분에 행복했다.

다음날 찜질방을 나온 우리는, 나의 기억이 맞다면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런 후 택시를 탔다. J군이 먼저 집 근처에서 내리고 나는 어제처럼 서점으로 가려고 했는데, 양심상 택시 비용은 내가 내기로 했다. 택시비를 내면 2만 원가량 밖에 남지 않겠지만, 찬란한 밤을 선사해 준 친구에게 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J군이 먼저 내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택시에서 내렸다. 왠지 부모님이 돌아다니며 나를 찾고 있을 것 같아 두려워 후드 모자를 쓰려는 찰나, 모자에서 지폐 여러 장과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5만 원권 한 장과 1만 원권 세 장, 그리고 5천 원권 한 장. 제일 마지막 떨어진 건 사춘기 남자아이의 삐뚤삐뚤한 글씨로 ‘파이팅’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하얀 종이 조각 한 장이었다. J군이 택시 안에서 나 몰래 내 후드 모자에 넣어둔 것이었다. 차마 직접 주기 민망했을지도, 혹은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길거리에서 8만 5천 원과 종이 한 장을 손에 꼭 쥔 채 참 많이 울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참 많이 쳐다봤는데, 찜질방에서 깨끗하게 씻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누가 봐도 가출한 청소년 같아 보였을 것이다. J군도 나와 다를 바 없는 학생인데, 8만 5천 원 정도의 거금이라면 그날 그에게 있어 전부였을 것이다. 그는 우울감에 빠져 있는 철없는 친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설령 그 친구가 바닥에 있어도 말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의 호기로운 반항은 그날 막을 내렸다. 가출을 해놓고 항상 가는 곳에만 있었으니, 하루가 지나도 집에 돌아오지 않자 찾아 나선 부모님의 눈에 바로 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록 출처 모를 8만 5천 원을 부모님에게 뺏겼고 혁명도 미수에 그쳤지만, 왠지 모르게 승리한 기분이었다. 나를 위해 모든 걸 내어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 덕분에, 혁명의 성공을 알리는 깃발은 마음속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나의 속상함과 억울함을, 언젠가는 느낄 기쁨까지도 함께 나눌 친구가 생겼으니까.


이후 J군과 나는 서로의 삶에서 꽤 많은 추억을 함께 하였다. 헤밍웨이의 회고록 「파리는 날마다 축제」 속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처럼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며 술 한잔을 기울이기도 했고, 퇴근길에 이유 없이 전화해 쓸데없는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J군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동안 면회 한번 가주지 않았지만, 갓 전역한 J군에게 엘 클라시코 경기를 보러 가자며 속여 스페인으로 데려갔다. 그렇게 신발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약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걸었다. (물론 축구는 보지 않았다) 재작년 J군이 평생의 짝을 찾으며 이전만큼 자주 연락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이이자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친구이다. 가까이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심하지 않다. 자주 열어보지 않지만, 그렇다고 먼지는 쌓이지 않도록 많이 아껴주고 있다.


내게 그런 존재인 J군이 얼마 전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내가 사는 곳으로 놀러 오겠다고 한다. 백수에게 부탁할 정도로 돈이 급한가 싶어 소박한 계좌 잔액부터 확인하고 이유를 물었더니, 새 생명이 찾아왔다고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항상 J군에게 자녀가 생기면 바오바브나무 같은 든든한 대부가 되고 싶다고 혼자서 상상했었는데, 날 보여주는 게 아이 정서에 안 좋을 수 있다는 J군의 장난스런(?) 카톡으로 보아 이미 탈락이다. 대신 덩치도 산만해지고 머리도 하얘진 김에 수염까지 길러 아이만을 위한 산타클로스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글로 전해보자면, 진심으로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와 그의 가족이 지나가는 모든 길이 스위트피가 가득한 꽃길이었으면 좋겠고, 그를 스쳐 가는 모든 공기가 순례길에서 함께 마주한 광활한 포도밭의 내음처럼 달콤하길 바란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이라고 했던가. 그해 여름 나의 혁명은 성공했고, 성공한 혁명의 일등 공신에게는 앞선 모든 보상으로도 그 치적을 기리기 힘들 것이다.


내일이면 J군을 본다. 철없는 두 30대의 농담을 안주 삼아 기울일 술잔을 마주치며 그에게 고마움을 전해야겠다. 내일도 우리는 술자리에서 수차례 반복해서 걸은 순례길을 또 걷겠지만, 비록 얼굴을 마주보고는 농담과 푸념만 주고받을테고 술기운에 낯선 숙소에서 쉽게 잠들지 못하겠지만, 그런 내일마저도 그가 행복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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