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향기를 사랑하는 당신에게

by 임준형

바야흐로 꽃의 계절이 돌아왔다. 하늘을 뒤덮고 있는 미세먼지가 사실은 꽃가루였더라면 좋았겠지만, 꽃은 황사 같은 방해꾼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역시.


KakaoTalk_20250326_100939887_05.jpg <모악산 대원사의 벚꽃 절경>


꽃의 아름다움을 논하려면, 과장을 한가득 보태 다음 해의 봄꽃들이 만개할 때까지도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꽃은 일단 단어 그 자체로도 신비롭다. 지금 당장 ‘꽃이라고 발음해 보자. 혀가 마치 태생부터 그랬다는 듯 입천장에 달라붙는다. 그러면서도 혀끝이 봄의 시작을 밀고 당기는 꽃망울들처럼 앞니를 벗어날 듯하며 자태를 쉬이 드러내지 않는다. 같은 발음 계열의 ‘옷’을 발음해보라. 미세하지만 혀가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우리 몸도 꽃을 발음하며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는 것일 테다.


한글은 ‘ㅇ’을 제외하면 전부 날 서 있다. ‘ㄱ, ㄴ, ㄷ’처럼 끝이 뾰족한 자음들과, 도무지 타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각진 모음들로 이뤄져 있다. 그런 모난 자음과 모음들에 ‘ㅇ’이 섞여 들어가 예쁘고 고운 말들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보면 ‘꽃’은 곡선이 하나도 없는, 장미의 가시처럼 스치기만 해도 따끔하게 베일 것 같은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꽃’이라는 단어는 발음만 해도 아름답다. 단어를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매혹하는 힘을 꽃은 가지고 있다. 그것이 꽃이 사랑받는 근본적인 이유일 테다. 생각은 물론이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니까.


꽃은 사람의 손을 탄다. 숙명 같은 친구인 인간이 사랑하고 아껴주면 꽃도 친구를 닮아간다. 자신의 향기를 기꺼이 친구에게 나눠주고, 황홀한 꽃잎의 수려한 곡선을 마음껏 뽐낸다. 시원한 물을 머금은 날에는 햇빛보다도 찬란하다. 예쁜 포장지에 감싸지는 것을 좋아하는 꽃은, 친구의 손에서 또다른 인간의 손으로 건네지며 향기와 아름다움과 감정을 함께 전달해 준다. 친구에게 새로운 친구까지도 만들어주는 한없이 이타적인 존재다. 그렇게 아낌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 준 꽃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생기를 잃어간다. 자신을 친구에게 몸을 온전히 맡긴 채, 아름다움을 더 잃기 전에 땅에 다시 묻혀 새로운 생명을 꿈꾸기도 한다. 또는 나 같이, 꽃의 모양이나 색보다 그 향을 사랑하는 친구를 만난다면, 자신의 미모를 완전히 잃기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친구를 행복하게 해 준다. 나는 꽃의 늙어가는 모습과 그 특유의 씁쓸한 향도 사랑하는 편이다.


KakaoTalk_20250326_100939887_01.jpg <하늘하늘한 스위트피 한 대>

혹자는 흙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꽃이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나머지 꽃을 꺾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들 한다. 만약 그런 사정이라면, 나는 꽃을 조금 덜 사랑하련다. 이기적인 나는 꽃의 배려심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 꽃잎의 달콤함과 시원함을 내 방 안에서 독점하고 싶다. 그리고 더 아름다운 꽃이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온전히 즐길 기회를 주고 싶다. 내가 느끼는 꽃의 향을 온전히 누릴 사람들을 상상하며 행복하고 싶다.


그래서 자그마한 우리 동네에 꽃집이 10여 개나 된다는 사실이, 사장님들에게는 경쟁의 현장이겠지만, 나 같은 이들에게는 마냥 즐거운 일상이다. 물론 즐겨 찾는 꽃집은 그중 한 곳뿐이지만, 길을 걸으며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바람을 타고 공기 중을 떠도는 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특권은 아무에게나 주어진 것이 아닐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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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정하는 꽃집. 나의 여과 없는 상상이 꽃으로 살아나는 신기한 경험을 매번 한다.>


글은 항상 끝맺음이 어려운데, 그런 김에 꽃집을 한 곳 소개해 본다. 혹시 아산으로 출장을 오거나 여행하게 된다면, 탕정면에 위치한 「꽃리」라는 꽃집에서 꽃 한 다발을 가져가는 행복을 누려볼 것을 권한다. 언제나 친절하신 사장님도, 매장 곳곳에 규칙성을 갖고 널브러진 꽃들도, 감각적인 포장지와 차가운 물을 머금고 있는 생기 있는 꽃의 향기도 너무나 완벽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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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며칠 전 사온 튤립의 물을 갈아주며 하루를 시작해 본다. 다음 주에는 사랑하는 나의 친구 비에게,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은 하늘 같은 하늘색 꽃을 선물해야겠다. 그녀는 내색하지 않지만, 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니 분명 행복해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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