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멍요정 Mar 30. 2021

안 보이기 전에, 안 들리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성인 되기 전에 실명할 것 같네요."


이 말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들었던 말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때부터였다. 갑자기 어디서 운을 몰아서 받았는지 시력이 고정되었다.

검사를 해도 똑같은 시력을 유지했다.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시력 조금씩 떨어질 거예요."

"청력 이미 떨어지기 시작했네요."


느끼고는 있었다. 눈 앞이 흐리다는 것. 귀가 아프고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

잘 보이지 않아서 안경을 새로 맞췄는데 얼마 되지 않아 그 안경도 금방 흐려지기 시작했다.

검사를 했는데 위험한 상태는 아니라는데 왜 시력은 떨어진다고 하는 걸까..

청력검사도 병원을 다니면서 여러 번을 했는데, 이미 청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체감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런 말을 듣는 건 무서운 일이었다.

'지금도 잘 안 보이고 아프고 잘 안 들리는데, 점점 심해진다고...?'

무서웠다.

앞으로 길고 긴 인생이 남은 나에게 시한부 선고를 내려주는 듯했다.


눈과 귀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건강 전반적으로 문제가 시작되었고, 신경에도 이상신호가 왔다.

아직 원인을 찾지 못한 고열 증상이 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봤는데 수치가 다 정상으로 되어있어도 39도를 넘는 고열로 입원을 하는 시간이 늘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해열제를 수액으로, 주사로, 약으로 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서 난감해한다.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려고 했는데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또 고열로 앓아누워버려서 미루게 되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멘붕에 빠졌다가 반복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정리를 했다.


일단은 무리하지 말자.

충분하게 휴식을 취하고 조금이라도 이상신호가 오면 기본적인 몸 상태를 체크하고 쉰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자.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안 보이게 될지, 안 들리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자.

미루지 말고 바로 하자.

사실 이게 가장 큰 변화였다. 내일, 다음 주, 다음 달, 내년.. 끊임없이 미뤄오던 내가 미루지 않기로 했다.

칼럼을 추천받고 필사를 시작하고, 캔바 특강을 듣고 1일 1캔바를 했고, 매일 포스팅을 한다.

바로 시작하고 꾸준히 하는 게 조금은 습관이 되었다.

기록을 멈추지 말자.

원래도 꼼꼼한 성격이긴 했지만 전보다 기록을 훨씬 잘하고 있는 것 같다.

바인더, 달력, 메모장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적는다.

손가락 인대가 망가져서 지금은 글씨 쓰는 거나 젓가락질을 하는 것조차 힘이 들지만, 대신 노션으로 기록을 추가하고 있다.

아직 타이핑은 칠 수 있으니까 필사도 타이핑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정해놓고 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변했다.

부정적인 데다가 귀차니스트 끝판왕이었던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스트레스도 확실히 덜 받게 되었다.

배우는 일이 재미있어졌고 나도 누군가에게 알고 있는 것을 전하고 싶어 졌다.


물론 최근에는 하루에 강의를 3개씩 듣는 날까지 생겨서 신랑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는 했다.

나도 무리를 했다는 걸 인정하고 지난주부터 쉬고 있다.



시력과 청력, 건강을 잃어가면서 나는 긍정과 변화라는 것을 얻었다.

아직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배우고 더 나누고 싶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안 보이기 전에, 더 안 들리기 전에.

나는 하고 싶은 게 많다.


시간을 흘려보내던 과거와는 작별했고, 지금은 조금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다.

짧은 시간에 변하고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바로 실행하고 꾸준히 해보자.

내 삶은 길다. 아직 나에게 남은 삶이 길다.

포기하지 말자.


작가의 이전글 임산부 아니에요! 그냥 뚠뚠이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