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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요정 Mar 23. 2021

임산부 아니에요! 그냥 뚠뚠이에요!

어느 뚠뚠이의 설움

청소를 하다가 뒤집혀 있는 체중계를 보고 올라섰다.


'아... 안 줄어드네..'


몇 달 전에 갑상선 저하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계속 피로 누적되고 안구도 튀어나오면서 시력이 떨어지고, 몸무게는 증가할 수 있다 등등의 다양한 증상이 나와있었다. 어떤 질병이든 많은 증상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근데 문득 체중계에 올라서고 나니 에피소드들이 떠올랐다.


에피소드 1.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공항에서 발권을 기다리고 있었다.

줄을 세우시던 직원 한 분이 다가오셨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직원 : "Are you pregnant?"

나 : "No! No no..."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아니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신랑이 물었다.


신랑 : "뭐라는 거야?"


참고로 신랑은 영어라고는 문법 밖에 모른다.


나 : "나한테 임신했냐고 묻던데.....ㅠㅠ"

신랑 :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 "에잇!"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결혼할 당시에도 나는 살이 꽤 있었다. 하필 결혼식 당일에 처음으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고 몸이 퉁퉁 부어서 많이 놀랐다. 결혼식 당일도 아니고, 신혼여행을 끝나고 돌아가는데 마지막에 저런 질문을 받으니.. 나는 나의 배를 쓰다듬으며 내려봤다.


전체적으로 살이 붙었지만 유독 배만 볼록한 나의 몸. 사실 나에게 질문했던 직원뿐만 아니라 누가 봐도 임산부라고 착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단지 웃픈 상황이었을 뿐.



에피소드 2.

아이 없이 둘만 지내고 있긴 하지만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 아니다. 결혼 초부터 우리는 아이를 갖길 원했고, 난임클리닉도 다녔었다. 난소를 활성화시키고 난자를 시기에 맞게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한 달 동안 3번의 주사, 일주일의 약 복용을 해야 한다. 나는 굉장히 예민한 편이라서 그 과정이 힘들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침대랑 세트로 지내는 와중에도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대구 엑스코 베이비페어'였다. 난임클리닉을 다니면 아이가 생기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1년에 한 번에서 두 번 정도 열린다는 베이비페어에 가보고 싶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박람회장에 갔다.


눈이 커다래질 정도로 너무 예쁜 것들도 많고 완전 신세계였다. 커다란 전시장에 홀릭되어있는 사이,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어머니 여기 오셔서 이것 좀 보세요~!"


순간 '어? 나?'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분명 나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순식간에 나는 임산부가 되어있었다. 심지어 다른 부스에서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머니~ 몇 개월이세요?"라고 말이다.


처음엔 조금 낯설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고객이 임산부 또는 영유아의 아이들과 함께 있는 엄마들이었다. 그러니 나도 자동스레 어머니로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중에는 어디서 '어머니~'하면 당연히 나를 부르는 줄 알고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의 외출은 힘들었다. 특히 난임클리닉에서 주사를 맞은 후 시체놀이를 하다가 나왔기에 몸에 무리가 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골반이랑 허리가 아파져서 허리를 붙들고 집에 가기 위해 걷다 보니 신랑이 한 마디를 던졌다.


"여보, 그렇게 있으니까 진짜 임산부 같아."


나는 고개를 휙 돌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베이비 페어에 배가 동그란 여자가 허리를 붙잡고 있다. 이건 누가 봐도 빼박 임산부였다.


"괜찮아, 임산부로 보여도 상관없잖아?"


굳이 나를 부르는 사람들 모두에게 '저 임산부 아닌데요?'라고 해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구경하고 내가 원하는 정보를 알면 되었다. 그리고 나중엔 진짜 어머니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약간 설레기도 했다.



에피소드 3.

작년 연말에 홀로 119를 불러서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음식을 도저히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비타민과 항생제, 해열제, 밥 대신인 것까지 총 4개의 링거를 달고 있었다. 그러다가 밥을 좀 먹어보라는 권유에 처음 죽이 나온 날이었다. 밥을 안 먹어봐서 몇 시인지 몰랐는데, 4시 50분에 배식하는 분이 죽이 담긴 식판을 가져다주셨다. 감사 인사를 하고 먹을 준비를 하는데, 나가다가 다시 들어오셔서는 나에게 물으셨다.


"임산부예요?"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나니 웃음이 났다. 오랜만에 듣는 이 질문이 예전의 에피소드들을 떠올리게 해서 웃었다. 신랑에게 전화해서 얘기해주었더니 또 웃었다.


식판을 가져다주시는 분이 올 때마다 나를 유심히 보셨지만.. 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신랑은 입원한 지 2일째 저녁에 만났다. 만나서 '임산부라고 묻더라고' 말했더니 또 빵 터져서 혼자 막 웃었다.. 홀로 입원한 아내를 이틀 만에 만났는데 신나게 웃다니..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겨우 넣어놨다.




결론.

나는 그냥 뚠뚠이다. 전에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어서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근데 지금은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저 커다란 눈사람만큼 크고요. 커다란데 뿔테 안경 쓰고 뒤뚱뒤뚱 걷는다고 별명이 판다예요. 호호호"


맛있는 녀석들을 보면서 항상 자신감을 얻는다. 그들은 "돼지다~~"라고 놀리는 말에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그래! 나 뚠뚠이다!"라고 되려 받아친다. 나도 이제는 당당히 말해야지.


"저 임산부 아니에요! 그냥 뚠뚠이에요!!"


가끔 뚱뚱하다는 단어가 들리면

"요즘엔 뚠뚠이라고 하거든요? TV 안 보시나 봐요~"라고 받아쳐버린다.

뚠뚠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아니... 오... 오겠지....?????

아냐, 올 거다!!


세상의 모든 뚠뚠이들이여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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