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닌 친구들 속 나
같은 나이, 같은 학교, 같은 반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라고 부를 수 없는 친구들이 가득했다.
13살, 여름이 다가올 때 나는 사람과 멀어져갔다.
다행히도 금방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집에 있으면 식구가 많아서 좁은 방에 하루종일 있어야 했지만, 많은 또래들의 눈길을 받으며 눈치를 보는 것 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방학이 되어도 아무도 안볼 수는 없다는 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때 나는 아파트 단지 앞의 상가건물 2층에 위치한 만화방에 가는 일이었다. 빌려와서 읽어도 되지만 집에서는 만화책을 보기엔 너무 복닥복닥했고, 만화방에서 읽으면 더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어서 몇시간씩 앉아서 수많은 만화를 탐닉했다.
하루는 만화방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와 다른 반인 아이들을 만났다. 학교에서 항상 눈에 띄고 몰려다니는 흔히 노는 아이들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부담스러웠고 조용히 지나가고 싶었다. 내 마음을 알고 있었는지 누군가 나를 불러세웠다.
모르는 척 지나가고 싶었다. 왜 돌아봤을까.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쳐다본 내가 미웠다. 3명의 동급생 여자아이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잘 모르는 애들인데 왜 나를 불렀을까. 괜히 불안했다.
나를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남자아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났다고. 확인하려고 불렀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의 이름도 처음들었고 누군지 몰랐다.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뭔가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알겠다며 멀어져갔다. 그 중 한 명이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걸 조금 지난 후 알게 되었다.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괴롭히기 위해서 악의적인 소문이 만들어진다는 걸 직접 체험해 본 순간이었다. 후에 성장하면서도 이런 방식의 소문들을 몇 차례 더 겪었다.
다른 반에서도 내가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도 느꼈다. 그래도 그때까지 큰 사건은 없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다.
사람이 무서워졌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모르는 아이들이 나에 대해 험담하는 것도 무리에 나를 끼워주지 않는 것도 오롯이 견뎌야 했다. 돌아가고 싶었다. 이사는 왜 왔는지, 전학은 왜 왔는지 너무 서러웠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는 같은 반, 다른 반 나눌 것 없이 친구들이 있었고 나는 너무 그리웠다. 전학을 오고나서 이전 학교의 친구들이 선물을 보내줬다. 내 몸과 내가 의사소통하는 친구들의 현실적 거리는 너무 멀었다. 멀리 있어도 그들과 소통하는 게 내 유일한 숨 쉴 구멍이었다. 산소호흡기와도 같았다.
지금이 악몽을 꾸는 순간이라고 믿고 싶었고, 꿈에서 깨고 싶었다. 깨어나면 친구들이 무슨 꿈이었길래 그렇게 땀을 흘리냐고 물어볼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며칠이 더 지나도 나는 꿈에서 깰 수 없었고, 지금이 현실이라는 걸 자각했다.
이게 현실이다.
나는 버텨야 한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단 한 명이라도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
난 여전히 사람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