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만의꽁냥 게임
이 글을 읽으면 '진짜로 저렇게 한다고?'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나는 실제 이야기들 중에서 먼저 떠오르는 것 순서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이건 결혼 생활 중에 우리 두 사람의 추억의 일부분이다. 실제 있었던 팩트를 글로써 적는 것뿐이다. 아마 쓰지 않으면 나중에 그냥 둘이 그랬었지라며 지나갈 수 있는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글로 적어두려고 하는 것이다.
아침에 정신을 차리고 나면 '오늘은 어디에 숨겼을까?' 고민을 한다.
한 군데씩 의심이 가는 곳을 체크하기 시작한다.
'오예! 찾았다!'
우리 두 사람이 숨기고 찾는 것은 바로 '편지'다.
여기까지 읽으면 '에이~' 이런 리액션을 보이며 나가기 버튼을 누를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한다.
편지를 서로에게 쓰고 숨기던 이 시기가 사실 나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였다.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로 상담센터를 찾고 진단을 받고, 없는 매물 덕분에 비행기 소리에 시달려야 하는 환경의 집. 이 두 가지가 제일 큰 문제였던 것 같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유리 멘탈이라서 순식간에 덮쳐오는 거대한 스트레스를 버틸 힘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청력이 떨어져 가면서 더 예민해지고 있는 귀는 그때도 소리에 영향을 많이 받았었다. 이 시기를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이 신랑과 나의 편지 숨기기였던 것 같다.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갑작스러운 스트레스에 힘겨웠던 내가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말하려 했던 것들을 까먹기 시작해서였다. 두 번째 이유는 신랑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꾹꾹 눌러오던 것들이 터져서 하루아침에 너무도 예민하고 까칠하게 변해버린 나를 참아주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굉장히 감정적인 상태여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뜬금없이 화를 내기도 했었다. 편지는 생각을 하면서 적을 수 있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만들 쓸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이런 이유로 시작한 편지 쓰기가 상대방을 위한 글이 되었고, 언젠가부터는 숨기기 시작했다.
첫 글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우리는 평범하게 시작한 커플이 아니기 때문에 '편지'조차도 노멀하게 전달하지 않았다. 각자의 컴퓨터를 함께 놓을 수 있는 책상을 맞춤 제작했어서 우리에게는 '나의 자리'라는 게 존재했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자리에 놓고 아침에 볼 수 있도록 했었다.
아침에 내 자리에 놓여있는 편지를 확인하는 게 하나의 일과이자 즐거움으로 느껴졌다. 그러다가 책 사이, 바인더 앞, 키보드 아래, 마우스패드 아래, 키보드 선반 등등 놓아두는 자리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정말 양호했다고 여기고 있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한 번은 현관문에 걸어둔 신문을 받는 가방에다가 넣어두어서 방을 다 뒤지고 나서 신문을 찾으면서 발견했다.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신문을 놔두기가 어려워 현관문에다가 부직포 가방을 걸어두었는데, 신랑이 장난기가 발동했는데 굳이 가방 안에 고이 넣어두었다. 원래 장난기가 굉장히 많은 사람인데 나 때문에 참고 살다가 한 번씩 발동할 때가 있는데 그날이 그랬나 보다.
대신 어렵게 찾은 만큼 찾았다는 쾌감은 컸던 것 같다. 또다시 그런다면? 음.. 지금은 문 밖에는 제발 안 놔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지금의 집은 문 밖에 놔둘 곳이 없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신랑은 내가 쓴 편지를 좋아한다. 옆에서 내가 계속 떠드는 것에 대해서는 반은 듣고 반은 흘리는 타입인데 편지는 왜 그리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모습이 또 기뻐 더 열심히 쓰기도 했다. 8년 차가 된 지금은 편지를 쓰는 일이 없어졌다고 해야 할까? 가장 최근 남긴 메모는 영양제 하루에 1번 1알씩 꼭 챙겨 먹으라는 포스트잇이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신랑의 생일이었는데 둘 다 아픈 데다가 당직, 회식 등이 겹쳐서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오랜만에 손편지를 써볼까 하다가 여태 기운이 없어서 쉬고 있었는데 진짜 오랜만에 손글씨로 한 장 가득 이야기를 적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