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함

정장 속에 꽃무늬 원피스라니. 하하.

by 필명 미정

여의도에서 일하는 친구 직장 근처에 콩국수 맛집인 진주집이 있다. 여름이 가기 전 콩국수도 먹고, 한강을 즐기기 위해 시간 맞는 친구들과 함께 여의도에 놀러 가기로 했다.


여의도가 내가 사는 곳과 그렇게 먼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이라고, 옷차림이 꽤나 신경이 쓰였다. 평일에 가면 직장인들이 많다고 해서 나도 그냥 출근룩으로 입을까 하다가, 언제 입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나름 비싼 원피스를 옷장에서 꺼내 입었다. 내가 입은 원피스는 쉬폰 원피스인데, 하얀 바탕에 잔잔한 꽃무늬가 어우러져 있는 샤랄라 한 원피스다. 너무 꾸민 티는 나면 안 되니, 운동화에 에코백을 챙겨 들었다.


여의도를 들어서기 전에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내 복장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았고, 크게 눈에 띄는 복장도 아니었다. 그런데, 여의도에 들어서자마자 잘못됨이 느껴졌다. 때마침 평일의 점심시간이었고 수많은 직장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의도 직장가의 거리에는 모든 사람들이 정장 차림이었다. 정장 속에 꽃무늬 원피스라니. 하하.

저 멀리, 다른 곳에서 온 친구가 보인다. 그 친구는 소위 말해 힙한 차림의 옷을 입고 왔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다들 정장 차림이라 우리의 복장이 창피하다'라고 이야기 나누었다.


그리고 오매불망 여의도 직장인인 친구를 기다렸다. 그 친구는 역시 여의도 직장인다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렇다고 옷 때문에 그날 하루를 망치거나, 너무 창피해서 숨어있고 싶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사춘기소녀도 아니거니와, 다른 사람들은 타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아는 나이도 되었다.



초라하다

1. 겉모양이나 옷차림이 호졸근하고 궁상스럽다.

2.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하지만 번듯한 정장 사이에서 나의 복장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 옷 자체로만 떼어 놓고 보면 분명 초라한 복장이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중요한 미팅이 있어 잘 차려입고 여의도에 가게 되었다. 업무를 모두 마치고, 여의도에서 직장을 다니는 그 친구를 또다시 만나 저녁을 함께 먹었다. 그날은 나도 당당하게 여의도 직장인들 사이에서 어울려 지낼 수 있었다.


참 이상했다. 나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친구를 만나는데, 복장 하나로 마음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날의 복장 선택은 미스초이스였지만 콩국수는 참 맛있었고, 친구들과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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