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사자] 사랑의 시작은 곧 이별의 시작

1화, 사랑의 시작은 곧 이별의 시작.

by 심스틸러

새벽 4시,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잠에 취해 있는 고요한 이 시간.



움직이는 몇 안 되는 것들의 대열에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합류한다.



동이 트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 걸까...


오랜만에 나서는 출근길이라 그런 걸까...



오늘따라 새벽녘 공기가 유난히 차고 무겁다.



때마침 쌀쌀맞은 바람이 불어와 나를 한번 스치자.



얼어 있는 나의 심장이 새삼스레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이별 사자] : '(심장을 어루만지며) 그래도 많이 녹은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나 보네. 사랑이란 거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지...'



오늘은 486번째 커플을 큐피드로부터 인수인계받게 되는 날이다.



사랑의 신 큐피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던 두 사람이 마주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스치는 수많은 인연들 중 서로 마주한 두 사람이 험난한 길을 함께 걸어갈 동행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준다.



그들의 역할은 거기까지이다.



함께 걷게 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기도 하고 함께 걷다 지쳐 서로를 등지고 각자의 길을 걷기도 한다.


홀로 걷다 지칠 때면 서로의 흔적이 그리워 몇 번이고 뒤돌아 보기도 한다.


이렇게 두 사람이 함께 걸으며 만들어가는 소소한 사건 사고들을 기록하고 두 사람에 사랑의 불씨가 꺼져가는 것을 함께 하는 것은 바로 이별 사자의 몫이다.



[큐피드] : "어이! 이번 커플 남자 담당 이별 사자인가?"



마침 저 멀리서 나를 발견한 큐피드가 처음 보지만 아무렇지 않게 반말로 쿨한 인사를 건넸다. 역시 큐피드 녀석들 중 4가지를 보유하고 있는 녀석은 찾기 쉽지 않다.



[큐피드] : "이번 커플도 특별히 잘 부탁해~ 까칠한 여자 성격 때문에 쉽지 않았다고~"



전날 밤 고백에 성공하며 실적을 올려 기분이 좋은 탓에 입꼬리가 귀에 닿은 큐피드 녀석이 커플 내역을 던지듯 건네며 뒤돌아선다.



큐피드의 거만한 뒷모습을 보자.


애써 잊고 지냈던 지난 최종 테스트의 기억이 사뭇 떠오른다.


이별 사자들은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며 실적을 쌓아 큐피드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자격을 갖춘 수천 명의 이별 사자들 중 사랑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단 한 명의 이별 사자만이 큐피드가 될 수 있다.


난 며칠 전 수천 년 만에 찾아온 기회에 마지막 문턱을 기어코 넘지 못했다.


감히 사랑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한 건방진 태도에 대한 결과였을 것이다.


큐피드가 되는 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험난하고 힘든 길이였다.


인간들이 사랑을 두고 어렵다 느끼는 것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다.



이렇게 큐피드가 되는 길이 쉽지만은 않기에 대부분의 큐피드들은 자신들이 우리의 선배 또는 상급자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 꼰대 같은 생각 덕분에 태어난 큐피드의 건방진 태도는 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작고 아담하지만 자만심 넘쳐흐르는 재수 없는 큐피드의 뒤통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별 사자] : (혼자 중얼거리며) 저런 녀석들이 사랑을 관리하니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지...



[큐피드] : "응??? 나한테 뭐라고 했어?"



[이별 사자] : "아! 아니에요... 그나저나 이번 커플은 얼마나 갈 거 같아요? "



[큐피드] : "(거들먹 거리며) 그건 너 하기 달렸지..."



[이별 사자] : "열심히 해볼게요. 이번 왠지 커플은 느낌이 좋아요."



[큐피드] : "그래, 수고하고~ 특별한 건 없어. 웬만한 건 커플 내역에 써놨으니 그거 보면 될 거야. 더 물어볼 건 없지? 그럼 난 바빠서 먼저 간다."



이것이 인수인계의 전부였다.


아주 친절하고 사랑 가득한 큐피드의 인수인계는 이렇게 급 마무리 지어졌다.


그렇게 큐피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곧 해가 뜨기 시작한다.



(꽤 시간이 지난 후)



아침 6시.



따뜻한 햇볕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어둠을 삼키자.



때마침 요란한 시계 소리와 함께 이불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나의 486번째 담당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28세, 뽀얀 피부에 앳된 얼굴, 순박한 인상에 언뜻 보면 평범한 듯 하지만 볼 수록 매력이 묻어나는 남자이다.



일어남과 동시에 휴대폰으로 자신의 기상을 누군가에게 알린다.



사랑이 가득한 눈과 입가에 미소만 보아도 상대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웃음꽃이 질 줄 모르는 이 순수한 남자가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






사랑의 시작과 동시에 이별은 시작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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