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콩깍지의 비밀
오늘따라 아침 햇살이 한층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별 사자] : '큐피드가 다녀가서 그런가...'
두 손에는 언제부터 들고 있었는지 기억에 담기도 전에 뒤돌아 사라져 버린 큐피드가 남기고 간 파일 뭉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별 사자] : 일 하자 일!
눈을 뜸과 동시에 분주하게 외출 준비를 하는 한 남자아이를 등지고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다리를 살짝 꼬고 출근길에 준비해 둔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후에 파일을 펼쳐 든다.
누군가의 사랑에 개입하기 전 나만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프로필]
이름: 조승우
나이: 28세
키: 185
직장 : 기장
성격: 순수하고 착하지만 눈치가 더럽게 없음, 빙구 기질이 있음.
취미: 독서, 게임
특기: 축구
* 걱정되는 점 : 세상에서 제일 게으름. 친구 녀석들 [도움이 안 됨].
-끝-
[이별 사자] : 뭐야 ~ 이게 끝이야??
두꺼운 파일 속 민망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 장의 문서를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5초도 되지 않았다.
이 한 장으로 한 사람을 모두 표현하고 인수인계를 끝내버린 존경하는 큐피드 녀석에게 다시 한번 삐뚤어진 존경을 표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별 사자] : (체념한 표정으로) 어떤 아이인지 내가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휴~
그렇게 옷장에 몇 안 되는 옷을 몇 번이나 고쳐 입고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도 마음에 안 드는지 벌써 다섯 번째 머리를 감고 있는 한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때 마침 얼굴의 윤곽을 타고 내려온 샴푸 거품 탓에 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는 승우를 찾는 소리가 저 멀리서 애교스럽게 울려 퍼졌다.
"카톡 카톡~"
뭐가 그리도 반가웠는지 승우는 서둘러 몸을 일으킨 탓에 미처 닫지 못한 화장실 수납장 문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콱!'
둔탁하면서 묵직한 소리가 좁은 방안을 가득 채운다.
소리만으로도 아픔을 가늠하기에 충분한 깊이 있는 울림이었다.
하지만 청춘의 아픔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승우는 화장실을 빠져나오며 아무도 걸리지 않을 것 같은 낮은 문턱을 사정없이 엄지발가락으로 걷어찼다.
신체의 가장 정상과 아래에서 전해져 오는 짜릿한 아픔에 승우의 손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승우] : 오 우우.....
아침 햇살의 조명 아래 모든 아픔을 몸으로 표현하듯 온 방안을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승우의 몸사위는 마치 수많은 한을 춤으로 표현하는 한 명의 무용수와도 같았다.
작은 공연이 끝날 때 즈음 빙구, 축구... 등에 큐피드가 남겨둔 문서의 단어들이 뭉개 뭉개 떠올랐다.
[이별 사자] : 큐피드 녀석 적어도 허위 사실을 작성 하진 않았네. 그런데 이 녀석 분명 엄청 게으르다고 되어 있었는데...
아침에 햇살은 모든 생명체를 깨운 후에야 대부분의 인간들을 흔들어 깨우고 이와 같은 패턴은 오랜 전부터 반복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지구의 많은 생명체들 중에서도 상급으로 게으르게 길들여져 왔다.
그 게으른 인간들 중에서도 한층 더 게으르다고 평가된 이 녀석이 주말 아침 6시부터 이렇게 부지런을 떨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별 사자] : 도대체 큐피드 녀석.. 이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익숙한 향이 내 코끝을 찔렀다.
큐피드가 사랑의 시작과 함께 인간의 심장 깊숙이 심어 놓는 '사랑의 콩깍지' 디퓨저 향이 분명했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큐피드가 쏜 화살이라고 표현하는 것의 유래이기도 하다. 디퓨저 향은 승우의 심장 박동과 함께 온몸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듯했다.
온몸에 퍼진 디퓨저 향은 온 세상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작은 일에도 웃음 지을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렇게 승우는 디퓨저 향에 취해 사랑에 물들어가고 있는 듯했다.
아픔 속 사경을 헤매는 승우의 얼굴을 다시금 보니 이 녀석 미간은 찌푸리고 있는데 입꼬리는 올라가 있다.
섬뜻하다...
엄청난 아픔에도 불구하고 웃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별 사자] : 평소 같지 않게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사랑의 힘 보면 볼수록 신비 하단 말이야!
하지만 초능력을 얻은 것 같은 이 디퓨저의 효과는 아쉽게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디퓨저 향에 수명은 100일 안팎으로 정해져 있다.
100일이 지난 이후 디퓨저 효과를 계속 이어가는 것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큐피드가 개입할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승우의 몫인 것이다.
승우는 아픔의 절규 끝에 휴대폰 속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언제 아팠냐는 듯 웃고 있는 것을 보니 그 여자아이 임이 틀림없다.
승우의 등 너머로 여자 아이의 프로필 사진이 보인다.
하얀 피부에 애교 섞인 눈웃음이 인상 깊은 청순한 단발머리의 여자아이가 웃고 있었다.
승우의 눈은 금세 웃고 있는 여자 아이의 모습으로 가득 차 올랐다.
아픔이 만들어낸 통증은 금세 사랑의 힘에 덮여 사라지고 있다.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들에게 만병 통치약으로 자리 잡은 이유를 다시 한번 보는 순간이다.
승우의 눈을 통해 들어와 재해석되어 기억 세포에 자리 잡은 여자 아이의 모습을 출력해 보았다.
[이별 사자] : 김사랑을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수지를 닮은 거 같기도 한데... 내가 본 아까 그 여자 맞아???
[이별 사자] : 큐피드 녀석 실적도 좋지만, 얼마나 독한 디퓨저를 심어 놓고 간 거야.
'콩깍지라는 거 큐피드의 장난일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