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사자] 과거의 이별 패턴은 반복된다.

3화, 과거의 이별 패턴은 반복된다.

by 심스틸러

메시지를 확인 한 승우는 외출 준비를 더욱 서두르기 시작했다.


한 평생 똑같은 속도로 일정하게 움직여 온 시곗바늘이 오늘따라 부쩍 빠르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째깍째깍


모든 준비를 끝마친 승우는 마지막 자신의 모습을 최종 검열이라도 하듯 전신 거울이 있는 작은방에 불을 밝혔다.


동그란 작은 체구의 노란 백열구는 자신이 밝히는 공간이 조금은 부담스러운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은은하게 내려앉은 조명 아래, 잘 어우러진 그림자 속 전신 거울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승우는 패션쇼 피날레를 장식하는 모델처럼 근엄하고 멋쩍게 걸어 들어와 거울 앞 조명 아래 멈춰 섰다.


레드 카펫은 없었지만 승우의 엄지발가락은 세상의 어떠한 붉은색보다 더욱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거울을 사이에 두고 한걸음 남짓한 거리에서 두 승우는 오랫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승우의 눈동자에는 승우가 있었고 그 속 승우의 눈동자에는 또 다른 승우가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잠시 잊은 듯했다.


오랜 정적 끝에 아무 말 없이 옷매를 몇 번 가다듬고는 눈썹을 실룩 거리며 조금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 섰다.


[승우] : '잘생겼네!'

[이별 사자] :.....?????

[이별 사자] : 우웩~! 아침부터 소화 안되게 왜 이러실까.. 시작도 하기 전에 이별당하고 싶나... (하늘을 보며) 당장 이 커플을 심판하게 하소서..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은 큐피드가 남기고 간 사랑의 디퓨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 지 오래이다.


보통 남자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지병들 중 하나로 보이는데 어디서 어떻게 발병하는지 아직 우리도 밝히지 못한 미스터리 중 하나이다.


집 밖을 빠져나온 승우는 오래된 가로등 불빛이 소소하게 비추고 있는 좁은 골목을 서둘러 빠져나가고 있었다.


승우와 그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 것이 느껴지자 더 이상 여유롭게 승우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상하게도 연인이라는 아름다운 관계가 맺어진 후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날은 매번 시계가 빠르게 움직인다.


[이별 사자] : 승우의 발걸음 속도를 보니. 승우의 정보를 모두 파악하기에 시간이 넉넉하지만은 않겠어.

[승우] : (콧노래를 부르며 발걸음을 더욱 빨리 재촉한다) 휘휘휘 호호호...

[이별 사자] : (고개를 저으며) 역시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서두르자. 서둘러... 더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상대 이별 사자에게 이상한 정보만 전달하게 되겠어.


내가 이렇게 서두르며 신중을 가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커플 1일째, 첫 만남에 처음 상대 이별 사자에게 전달되는 정보는 인간들의 첫인상만큼이나 이별 사자들에게는 아주 큰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전달받은 정보를 기반으로 우리는 수만 가지 사랑의 규칙과 기준을 세우곤 한다.


다양한 분야별로 정리된 이 사랑의 규칙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애법'이다.


이 '애법'은 단 두 사람에게만 법적 효용성을 가지고 있으며 위법 시 '삐짐'과 '토라짐'에 처벌이 주어지며 중죄에 해당할 경우에는 '연락두절'이라는 엄벌이 처해진다.


이렇게 누적된 위법 사항이 서로가 감당할 수 없게 될 경우 결국 두 사람은 파멸에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래서 이별 사자는 첫 만남 전까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인간의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수집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오해를 살만한 정보나 잘못된 정보들로 인해 서로의 관계를 오래 지속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가량이다.


시계의 분침이 한 바퀴를 돌아가는 동안 승우의 습관, 직업, 취미, 가치관.. 과 같은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시작해서 과거의 이별 내역들까지... 모두 파악해야만 한다.


한동안 나와 함께할 승우라는 이 아이는 도대체 어떤 아이일까???


이렇게 던져진 작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 가장 먼저 내가 찾은 곳은 다름 아닌 승우의 눈이었다.


인간들에게 있어 가장 많은 정보가 오가는 장소이기도 하고 정보의 왜곡 정도를 보면 그 사람을 쉽게 알 수 있기에 승우를 파악하기 가장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승우의 눈 주변에 자리 잡은 세포의 기억을 따라 지금까지 승우가 바라본 세상을 함께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을 자주 보는 이 아이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닮은 맑은 아이였고 반짝이는 별을 유독 좋아하는 이 아이는 순수하게 빛날 줄 아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맑고 순수한 이 아이의 눈은 왠지 모르게 항상 촉촉이 젖어 있었고 때론 초점을 잃은 채 한참을 방황하기도 했다.


승우의 눈에서 본 정보만으로 승우를 표현하기에는 다소 애매모호한 것들이 너무나 많은 듯했다. 듬성듬성 비어있는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정보가 필요해 보였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다름 아닌 승우의 귀였다.


인간은 그 순간에 느낀 감정과 닮은 음악을 듣는 버릇이 있기에 승우의 감정에 흐름을 알기에 적합한 장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승우의 귀에 맴도는 소리를 들으며 승우의 귀를 스친 노래들을 엿들어 보았다.


신나는 힙합 음악을 즐기는 이 아이는 흥이 넘치고 쾌활한 성격의 아이였고 때론 잔잔한 인디음악을 들을 줄 아는 이 아이는 느리게 걸으며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여유가 넘치는 아이였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 없이 오랫동안 길을 걸어온 사람처럼 온 세상을 슬픔으로 흠뻑 적셔 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승우의 흔적들을 쫓아다니며 승우라는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한차례 승우를 파악한 후, 내가 바라본 승우를 몇 안 되는 문장으로 함축시켜 표현하려고 하자 쉽게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 동안 펜을 빙그르르 돌리며 머뭇거리다.


다시 한번 내가 느낀 승우를 떠올려 본다.


그 속에 편견이 남아 있는 건 아닌지...

선입견이 있었던 것은 없는지...


유난히 이번에는 왜곡 없이 온전한 승우를 글에 담아 상대방 이별 사자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다시 떠올려본 승우는 매번 웃고 있지만 울고 있는 듯했고 힘이 넘치지만 어깨는 처져 있는 듯했다.


말 그대로 승우는 알면 알수록 지금까지 본 아이들과 다르게 딱 떨어지지 않고 물음표가 붙는 친구였다.


힘겹게 승우라는 사람을 잘 다듬고 빚어 몇 장의 종이에 구겨 담았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오로지 나의 모든 시간을 승우로 가득 채운 탓일까...


짧은 시간에 부쩍 승우와 가까워진 느낌이다.


대부분의 정보는 얼추 수집이 완료되었다.


이제 마지막 하나의 퍼즐만이 남았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항상 마지막에 확인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이별 내역'이다.


[이별 사자] : 승우는 어떤 이별 이야기를 가슴에 묻어 두고 있을까나...



'시곗바늘도 제자리를 돌 듯 과거의 이별 패턴도 반복되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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