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먹은데로 ~
토요일 아침, 평소보다 조금 늦게 알람 소리가 내방을 가득 채운다.
눈을 반쯤 뜬 상태로 커튼을 열어젖혀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고서야 잠에서 깨어난다.
어느새 탁상 위에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나는 향기 가득한 커피에 취해가고 있었다.
방안을 가득 채우는 커피 향과 노래는 환상에 궁합을 자랑하고 있었고 여기에 따뜻한 봄 날씨와 꽃내음의 조미료로 완벽한 토요일 아침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좋지 않았던 커피와의 첫만남"
검은 커피에 비친 나의 얼굴은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이렇게 즐겨 찾는 커피와 첫 만남부터 친해진 것은 아니었다. 커피라 하면 다방커피만 떠올렸던 스무 살에 어린 나이에 검은색 쓴맛의 음료를 비싼 가격에 먹는 친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친구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마신 첫 커피는 너무나 강렬하게 나의 혀를 놀라게 하여 주었고 일그러진 얼굴은 첫 경험에 느낌을 생생히 전달해 주기 충분하였다. 내가 무엇을 마시는지... 어떻게 즐기는지도 모른 체 달려들었기에 커피에 첫인상은 나에게 그리 좋은 기억만은 아니었다.
"헤어졌던 커피의 재회"
그 이후 커피를 잊고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구름 한 점 없는 따뜻한 어느 봄날 커피는 불현듯 나를 다시 찾아왔다. 지인 소개로 커피에 대한 강연을 듣게 된 것이다. 이렇게 커피와 나는 끊어질 것 같았던 인연에 끈을 다시 이어 나갔다.
역사, 생산지, 종류, 제조법에 이어 즐겨 마시는 방법까지...조금이나마 친해지기 시작하자 탐탁지 않았던 첫인상과 달리 서서히 호감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강연이 끝나자 평소 쳐다도 보지 않았던 커피를 다시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몇 년 만에 처음 커피를 만났던 그곳을 다시 찾았다. 커피숍에 적혀 있는 [과테말라]라는 익숙한 단어의 환영 인사는 생각보다 나쁘지만은 않았다. 조금 배웠다고 벌써 생색을 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겨우 다독이며 햇빛이 잘 드는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는 마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여유를 한 모금 마시겠다는 생각으로...'
좋지 않았던 경험 탓에 첫 한 모금은 쉽지 않았다. 커피가 혀에 닿지도 않았는데 얼굴이 먼저 반응하여 오만상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커피와 혀가 재회를 하는 순간 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느꼈다. 들리지 않았던 카페에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은은하게 퍼져 있는 커피 향이 내 코를 타고 들어왔다. 이렇게 커피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커피는 내 삶과 많이 닮아 있더라구요"
내가 커피의 매력에 점점 빠져갔던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삶과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른 체 끌려갔을 때와 즐길 준비가 된 이후 내가 찾아가 만난 커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바리스타가 바뀐 것도 커피 제조의 기술에 혁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마음이라는 재료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마치 내가 살아온 길을 보는 것만 같았다. 어리숙한 사회 초년생인 내가 바라본 세상은 감히 오를 상상도 하기 힘든 큰 산이었다.서른이 된 지금 바라본 그산은 넘어볼 만한 동네산처럼 느껴진다.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동산을 오르듯 이산 저산을 뛰어다닐 것이다.
"원래 하수가 걱정이 많지. 고수에게는 놀이터요, 하수에게는 생지옥이지"
-영화 신의 한 수-
영화 속 대사 한 구절이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다. 커피라는 놀이터를 찾았듯 내 삶도 멋진 놀이터가 되어줄 것만 같다. 삶을 놀이터로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마음먹기 하나면 충분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난 커피 한 모금에 삶 한 모금을 마시며 토요일 아침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