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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스틸러 Nov 16. 2015

서른이 되면 보이는 것들

서른 살이 알아야 할 센스

2015년 1월 1일 00시 00분
'댕~'  새해를 알리는 의미심장한 타종 소리는 미세하게 움직이는 나의 심장을 흔들어 깨웠다.
일정한 간격으로 33번을  울리는 타종은 나의 서른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듯했다.
많은 사람의 환호 속에 서른의 씁쓸함이 묻어나 즐길 수만은 없었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가 심장을 어루만진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가사 그대로였다. 아프기 싫은 나이, 행복 앞에 진지한 나이가 되었다. 서른이라는 단어는 생각했던 것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오빠보다는 아저씨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렸고 홍대나 신촌에 있는 내 모습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다.
전날 먹은 술을 해독 하기에는 24시간이라는 시간이 부족했고 비가 오는 소식은 기상청보다 무릎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알려줬다.
3이라는 숫자는 아무런 예고 없이 나의 육체 상승곡선을 하강곡선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리막은 아니었다.

"이제야 아버지가 이해가 되는 나이"


어릴 적 내가 그린 가족 그림에 아버지는 항상 누워 계셨다. 내가 평소에 본 집에서의 아버지는 항상 그랬다.
항상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으셨다. 일을 하는 건 어머니 역할이고 피곤한 건 아버지 역할 같았다.
그랬던 내가 월요일이 시작도 하기 전에 금요일을 기다린다. 수요일이 지나 집에 돌아오면 손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 퇴근과 동시에 침대와 하나가 되어 버린다.
주말엔 감히 앉아 있는 것도 사치다. 웬만하면 침대에서 모든 일을 해결한다.
서른 살에 만난 전화 속 아버지 목소리는 많이 늙어있었다.
긴 세월을 이겨낸 그 목소리는 오래전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해 주었다.

"자연을 흐느끼는 나이"


20살에 나는 사람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좋았고 푸른 숲보다는 빌딩 숲 속에 있는 내 모습이 좋았다.
식탁 앞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록빛 채소들은 혹시나 몸이 더 건강해질 것이 겁이나 쳐다보지도 않았다.
바쁜 삶 속에 여유가 찾아오면 사람이 많은 홍대/신촌/명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랬던 내가 간혹 풀냄새를 그리워한다. 조용한 바닷가에서 눈을 감고 앉아 바람이 내 얼굴을 어루만져주면 "이맛에 사는구나" 하며 부모님이 하시던 말을 나도 모르게 뱉어 낸다.
떨어진 낙엽에 눈시울을 적시고 창 너머로 들리는 빗소리를 즐기며 자연이 전해주는 사소한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다.
활활 타오르던 정오의 태양보다 저물어가는 따뜻한 붉은 노을을 보며 몇 안 되는 눈가의 주름으로 더 따뜻한 미소를 지어본다.  

"힐링이 필요한 나이"


내가 정해 놓은 그곳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그 길이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길이 아니라면 언제든 돌아와 다른 길을 향해 다시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는 길에 휴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힘들면 언제든 쉴 수 있었고 잠시라도 멈추면 뒤따라오던 거북이들이 나를 지나쳐 버릴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 언제나 일등이고 싶었다.
이제는 앞으로 가는 것만큼이나 멈춰서 쉬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마라톤과 같기에 나만의 페이스로 한걸음 한걸음 신중히 내디뎌야 한다.   
앞서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가고 싶은 그곳에 어떻게 도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가는 길에 휴식은 더 이상 낭비가 아니다. 인생 여정에 다음 한걸음을 내딛기 위한 사막에 오아시스 같은 것이다. 목이 마르다고 벌컥벌컥 다 마셔 버려서도 안되고 너무 아껴서도 안된다.
땡볕에 무더운 사막은 너무나 힘들지만 고통 속에 만난 오아시스가 주는 즐거움은 잊을 수 없다. 나를 기다려 주는 오아시스가 있기에 난 또 이 무더운 사막을 포기하지 않고 걷고 있는 것이다.

잃는 것이 있으면 채워 주는 것이 있었다.
20대가 끝나면 나를 지탱해 주던 꿈과 희망이 없어질 것만 같았다. 30살이 된 지금 나는 20대보다 더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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