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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스틸러 Feb 11. 2016

감사한 기억의 알츠하이머


'또 기억이 나지 않았다.'

힘겹게 꺼낸 부탁을 매정하게 거절당한 친구의 뒷모습을 본 나의 마음은 미안함보단 서운함이 먼저였다. 친한 친구가 가볍지 않은 부탁을 입 밖으로 내뱉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하면서도 오랜만에 마주 앉아 형식적인 짧은 안부인사에 이어 곤란한 부탁을 쏟아 붙던 친구의 모습은 더 이상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항상 그랬다...'
자신이 필요할 때만 찾던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년간의 세월 속에 가려 있었던 섭섭한 감정들이 그 아이의 간절한 부탁을 쉽게 거절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수많은 변명들을  늘어놓으며 불편한 마음을 달래 보았지만 한 번 먹먹해진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나 시간이 지났을까.. 섭섭한 마음도 쓸쓸한 친구의 뒷모습도 흐릿해져  갈 무렵 퇴근길 버스 안, 깊숙이 숨어 있던 기억이 스치듯 지나갔다. 기억 속의 친구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에게 무언가를 건네고 있었다. '이제야 떠올랐다. ' 섭섭했던 기억 사이로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릴 적 넉넉하지 못했던 나를 위해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대가 없이 나에게 많은 것을 준  아이였다. '왜.. 그때 떠올리지 못했을까..' 섭섭한 기억에 휩싸여 고마웠던 기억들을 당당하게 잊고 있었던 과거의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뒤늦게 돌아선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았지만 되돌리기엔 우리 사이는 너무나 멀어져 있었다.

'왜 감사한 기억은 이리도 빨리 사라지는가?'

부모님이 주신 끝없는 사랑, 친구의 따뜻한 위로, 사랑하는 연인의 존재까지도... 매 순간 되뇌어도 아깝지 않을 기억들은 항상 주변에 있다는 이유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에 널려 있는 자극적인 콘텐츠들 속에 휩싸여 더 자극적인 슬픔, 상처, 좌절에 대한 기억만 나도 모르게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 달콤한 자극에 가려져 소중한 기억들은 쉽게 잊혀 가고 있었다.     


'감사함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쉴 새 없이 받아온 과분한 사랑에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아침/점심/저녁 정해진 시간이 되면 차려지는 식탁 위의 엄마표 만찬과 같았다. 하지만 영원히 내 옆에 있을 것 같던 '사랑'이 예고도 없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감춰져 있던 소중한 존재를 인지 할 수 있었다. 평상시에는 잊고 살다가 그것을 잃고 나서야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알츠하이머 환자와 다를 것이 없었다.

'감사한 기억들을 쓰다.. 종이 위에... 머릿속에... '

기억 속에 감사한 기억들을 하얀 종이 위에 빠짐없이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며칠 전 스치듯 지나간 로버트 에먼슨 교수의 글이 떠올랐다. ' 하루에 다섯 가지 감사한 일을 적으면 행복지수가 상승하고, 생각도 긍정적으로 변한다.' 단지 글을 쓴다는 행위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에 의심 어린 마음으로 지나쳤던 글이었다. 감사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로버트 에먼슨 교수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얀 종이에 빈틈없이 쓰인 기억들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잊지 않겠노라고...

[작가의 말]
인터넷 세상에 사람 간의 연결고리가 더욱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 거리는 과거보다 멀어져 가고 있다. 서로를 위하는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며 베풀며 살아갈 줄 아는 자세는 현실에 꼭 필요한 모습이라 생각한다. 자기의 아픔만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린아이의 심리에 불가하다. 서른 살의 어른이라면 감사함을 간직할 줄 알고 서로를 배려하며 나눌 줄 아는 마음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글 : 심스틸러

그림 :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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