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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스틸러 Mar 13. 2016

잠든 아이들이 남기고 간 선물

노란 리본


여행 시작의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쉬운 마지막 일정의 버스에 몸을 실었다.
7박 8일이란 시간은 기다릴 때는 한없이 길어 보이지만 뒤돌아 보면 아쉬움으로 뒤덮인 시간에 불가했다.
마지막 여행지는 유명한 맛집이 있는 곳도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기다려주는 곳도 아닌 2년 동안 마음에만 담아 두었던 사연이 담긴 장소이었다.  
지나왔던 수많은 여행지와 다르게 그곳으로 가는 길은 가득 찬 설렘으로 쉽사리 잠을 청하지 못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준비해온 노래가 두 바퀴를 돌고서야 작은 등대 하나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에 설렘 너머로 괜스레 숙연해지는 마음이 밀려왔다.
서서히 속도를 줄이던 버스가 멈춰 섰다.

수평선 너머로 간당간당 턱걸이하고 있는 해를 발견하고는 굳어 있던 몸에 배려는 생략한 체 무작정 달리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노란 물결이 출렁이는 바다가 펼쳐졌다.
황홀한 장면에 압도되어 잠시 멈춰 서 옷맵시를 정리한 후에야 노란 물결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수많은 아이들이 잠들어야만 했던 팽목항이었다.
수많은 노란 리본들은 아우성치며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고 나의 가슴을 찢는 듯 파도들은 방파제에 거세게 부서지고 있었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2년 전 텔레비전 너머로 보이던 모습과는 다르게 외로이 자리 잡고 있는 분향소 앞에 섰다. 얼굴 한번 맞댄 적 없는 인연이지만 아이들의 눈을 쉽게 쳐다볼 수 없었다.  
같은 공간에 숨 쉬고 있었던 어른이라는 것만으로 때 묻지 않은 아이들 앞에 충분히 죄인이었다.
어쩌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핑계를 대며 이곳에 오지 못한 것이 아니라 피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피어나는 향에 도움을 받아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우연이였을까..
처음 나와 눈이 마주친 건 유민이었다.
유민이와의 인연은 김훈 작가님의 '라면을 끓이며'에서 시작되었다. 아빠가 준 유민이의 만 원짜리 여섯 장은 차가운 바닷물에 적셔져 고스란히 돌아와야 했다.
그 순간 눈시울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흘러내리는 눈물을 급하게 수습하고 분향소를 빠져나왔다. 2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얄미운 바다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얼마나 춥고 두려웠을까..'
어두운 바닷속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춥고 무서웠을 것이다. 그 누구도 아이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저 두려움에 떠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어느새 나는 그 당시 아이들의 시선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받아 드려야만 했던 그들에게 호주머니에 있던 몇 장의 지폐와 명품 가방, 좋은 옷들 평상시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 같던 것들이 순식간에 가치를 잃어버린 체 쓰레기 더미가 되어 있었다.
부모님께 평소 하지 못했던 흔한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나 하고 싶었고 마지막인 줄 모르고 흔들었던 두 손 너머에 그 얼굴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행복함과 사랑함은 아껴두지 말았어야 했다.

이것은 마지막으로 유민이가 나에게 남기고 간 선물이었다.
'다가올 행복을 위해 꼭 해야 할 일들을 미루지 마라고...'

붉게 타오르던 태양을 잔잔한 바다가 삼켰다. 그리게 나의 여행은 슬프고도 따뜻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세월호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인 아물지 않은 상처입니다.
4월 16일 잊혀 가는 그날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자 이 글을 올려봅니다.


글 : 심스틸러
그림 :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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