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책 한 권을 추천 받아 읽게 되었다. 페미니즘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평등주의자인 나는 현 시대의 여성들이 여러가지로 불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남성우월주의라던가 여성혐오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들도 여성들은 단지 성별이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있었다. 그런 부분에 대한 무지가 어쩌면 이 세상이 아직도 성에 대한 불평등한 곳인채로 있게 일조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또 여성들의 마음속 불안을 조금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 한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초등학교 6학년으로 기억된다. 점심시간에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은 친구 녀석이 드라이 아이스를 가지고 왔다. 하얀 물체가 물을 뿌리면 연기를 내며 순식간에 사라지는게 마냥 신기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수업시간, 장난끼 많은 친구는 앞자리에 앉은 여자아이가 발표를 하기 위해 일어난 순간, 그 애의 의자에 드라이아이스를 올려 두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어.. 어.. 저러면 안되는데.. 하고 생각하며 어떻게 하지?' 하고 잠시 고민을 했고, 안되겠다 싶어서 드라이아이스를 치우려고 여자아이의 의자로 손을 가져가 드라이아이스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발표를 마친 여자아이는 자리에 앉으려 했고, 내 손은 드라이아이스를 쥔 채로 그녀의 엉덩이와 의자사이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깜짝 놀란 여자아이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어..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입은 얼어 붙었고, 그렇게 선생님께 혼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도와주려고 한 건데, 억울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도와주려던 방법이 잘못되었던 것인데, 그때는 그런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
책에서도 학창시절 남자아이들이 아무런 생각없이 저지르는 장난에 여자아이들이 마음에 어떤 불안이 쌓이는지 씌여 있지만, 돌이켜보면 책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이 훨씬 많다. 내 주변에도, 또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브래지어를 처음 차고 온 친구를 놓린다던지, '너는 여자니깐' 이란 말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책을 읽으면서 지난 시절의 내 어리석음을 후회했고, 그 어리석음으로 인해 어떤 사소한 불안이라도 마음에 쌓였을 여자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성불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나도 쉽게 말하던 편인데, 실상은 나도 그런편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인정한 후에 그것을 대하는 자세는 또 다른 법이고, 세상이 그렇더라도, 그렇게 살아왔고 배웠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말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내 주변사람이 그럴때 때론 함께 어울려 키득거렸고, 말리거나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해야 했던 순간에도, '나는 그렇지 않으니깐' 이라고 생각하며 침묵했던 것도 잘한일이 될 수 없다.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이 있다.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는 것이 이 사회에서 저런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느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사회가 그렇다고 해도 여자가 한 인간으로서 잃어야 할 것들은 당연시 될 수 없다는 것을 미처 자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더 큰 물음이 다가온다. 나는 저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또 나는 장차 누군가의 인생의 동반자로서, 또 둘 사이의 자녀의 아버지로서 동반자와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상은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사회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며 어떻게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걸까?
우리 부모님은 내가 6살때 이혼을 했다. 그리고 나는 아빠와 함께 살게 되었다. 분명, 사회적, 경제적 약자인 엄마는 우리를 부양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혼자가 되어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기도 분명 버거웠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이라면 더더욱 그랬을테니 말이다. 위의 형광팬으로 밑줄 친 문장이 그리운 엄마와 함께 다시 다가온다. 그 때 우리 엄마는 세상 모든 걸 다 잃은 것과 마찬가지였겠지..
이 글을 빌어 세상의 모든 여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앞으로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진심을 담은 이 사과가 먼저다. 나는 기득권자였고, 그래서 무지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랬던 나를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