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질문
그날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믿지 못 할 말을 해서가 아니다.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나는 저녁식사를 하고 평소처럼 술을 한 잔 하기 위해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평소처럼 쓸데없는 이야기로 희희낙락하던 중 그녀가 내게 대뜸 물었다.
"야. 만약에 내일부터 나를 볼 수 없다면 너는 지금부터 나랑 뭐하고 싶냐?"
"뭐? 뭔 헛소리야?"
"헛소리가 아니라 내일이 지나고 나면 나를 다시는 볼 수 없다면 너는 나랑 뭐하고 싶냐고?"
"무슨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그래?"
"아니, 쓸데없더라도 궁금하니깐 묻는거야. 만약 그렇다면 너는 나랑 뭐가 하고 싶냐고?"
"왜 내일 죽기라도 하냐?"
"만약 그렇다면?"
"뭐?"
"만약 그렇다면 어쩔건지 대답해봐."
"야, 너 오늘 왜 그러냐?"
"자꾸 묻지 말고 그냥 대답해주면 안되냐?"
"음..."
"안죽을거니깐.. 대답하라고"
갑작스런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척을 하면서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먼저 생각해보았다. 혹시 정말 죽으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가장 내 마음을 흔들었다. 하지만 맞은편에 앉아 손을 턱에 괴고 내 대답을 기다리는 그녀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삶의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이 만우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호라. 장난을 좀 제대로 준비해왔구나 싶었다. 난 기꺼이 그녀의 장난에 응하기로 했다.
"내일 언제까지 볼 수 있는 건데?"
"지금부터 24시간"
"음..그럼 일단은 계속 술마시자! 나머지는 좀 더 있다가 대답할게."
"그래."
그렇게 그녀와 나는 평소처럼 어디에 맛집을 새로 알게 되었는데 그집 메뉴가 소주랑 딱이라던가, 며칠전에 본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술집에 흘러나오고 있는 노래등을 안주 삼아 소주 한병을 비웠다. 그녀는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이제 23시간 정도 남았어. 남은 23시간을 나랑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얘기해줘."
"뭐야. 정말 23시간 보고나면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너무 단호하게 말하는거 아냐?"
"대답해준다며?"
"대답이야 할 건데, 지금 니가 너무 단호박처럼 이야기하니깐 좀 무섭잖아."
"뭐가 무서운데?"
"보통 이런 질문은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들이 하는.. 니 말투가 좀 그런거 같아서."
"안죽을거야."
그녀는 내 잔을 채워주고 소주병을 건네주었다. 나도 그녀의 잔에 술을 채운다.
"그러니깐 빨리 질문에 대답이나 좀 해봐."
"야. 너 지금 만우절이라고 뭔가 수작부리는 거 같은데.. 내가 넘어갈 거 같냐?"
"만우절? 오늘 만우절인가? 아.. 그렇구나."
"뭐야? 만우절인지도 몰랐냐?"
"요즘 좀 정신이 없었으니깐.. 너 웃긴다. 내가 만우절이라고 이런 거짓말도 아닌 질문을 할 거라고 생각한거야? ㅋㅋㅋ 얼척없네.ㅋㅋㅋ"
뭔가 혼자 상상하다가 엄청난 비웃음을 당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쓸데없는 상상력에 화가 조금 치솟았다. 하지만 나 자신을 탓 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럼, 하나만 물어보자. 대체 그게 왜 궁금한거냐?"
"그냥.. 너 만나러 오는 길에 갑자기 궁금하더라고. 오는길에 인터넷에서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살라. 이런 글을 읽었는데, 만약에 널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혹시라도 너나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면 나는 너를 만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되돌아볼까? 뭐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너가 하고 싶은대로 해줘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너도 나랑 같은 생각으로 해야 공평하겠다.. 뭐 이런생각이 들었거든."
어처구니없는 그녀의 이야기에 왠지 모르게 호기심이 샘솟았다. 오늘 밤이 그녀와의 마지막 시간이라고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불쑥 슬픔과 아쉬움이라는 감정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자꾸 고개를 젓게 되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단지 상상하는 것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깐 어서 말해봐. 벌써 또 10분 지났어. 아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음..일단은 집에 보내고 싶지 않을 것 같아."
진심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녀의 남자친구가 아니었고, 그녀도 나의 여자친구는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썸을 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그녀를 사람으로가 아닌 여자로 좋아하고 있었다. 부끄러웠지만 괜찮았다. 만우절이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 나 집에 안간다?"
그녀는 소주잔을 들어 내게 내밀었다. 잔 너머로 발그레 웃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