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불이나도 유연하게
내가 하는 일은 영상, 공연 등 변수가 많은 일이다.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단 한번도 계획대로 진행된 적이 없다. 000큐시트, 000큐시트 수정1차, 000큐시트 완성, 000큐시트 최종, 000큐시트 최종 수정 완, 000큐시트 파이널...(하아..적기만 해도 화가 치밀...)
영상이든 문서든 행사 진행이던 여기저기에서 수시로 변동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쪽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순간에 얼마나 유연하게 잘 대처하는가도 중요한 덕목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종종 그러한 덕목을 이용하는 그럼 사람들이 있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경우가 아니라,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것이다. 수 많은 예비 플랜을 준비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누군가 예측 가능한 어떤 상황을 이야기 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최소한 자신이 해 볼 수 있는 부분들은 어디까지인지 가늠해보길 바랄뿐이다. 심지어 최종 결정권자가 아닌 사람에게 급작스레 이 상황을 처리해달라고 하면, 그 사람은 도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예전에 모 가수의 콘서트에 중계를 하러 간 적이 있다. 공연 하루전에 온 연락이었다. 가기로 결정된 순간부터 불안했다. 그쪽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그쪽에서 준비해줘야 할 사항들에 대해 전달했다. 그리고 다음날 행사장에 도착해서 리허설을 위한 세팅을 시작했는데, 이 공연을 담당함 연출이 보이지 않았다.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역시 받지 못했다. 일단은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세팅해두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나타난 정체모를 사람이 혹시 카메라를 한대 더 쓸 수 없냐고 물었다. 예비로 가져온 장비는 있지만, 그걸 운영할 사람이 없다. 그래도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아.. 뭐 해줄 수 있다. 관객들에게 치이지 않을 장소를 찾아 세팅해주었다. 공연중에 가사를 자막으로 넣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당일에 우리가 일일이 타이핑을 해서 넣어줄 시간도 인력도 없다고 했다.(당시 스텝은 기술감독인 나와 카메라맨 2명이 전부였다. 이정도의 스텝으로 영상을 채우려한 부분부터 사실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야만했었다) 넣고 싶으면 그쪽에서 텍스트를 소절별로 나눠서 준비해 달라고 했는데, 당일 내가 받은건, 노래 소절별로 나뉜 파일이 아닌 그냥 통짜 한글파일이었다. 결국, 나누는 작업도 했다.
리허설을 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연출이 나타나지 않았다. 콘서트의 주인공인 가수는 화가 났고,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고 했다. 하지만 공연을 엎을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쪽 바닥에서 잔뼈거 굵은 음향, 조명 감독님들과 함께 무사히(?) 리허설을 마쳤다. 그날의 공연은 2쇼였다. 첫번째 공연이 시작할때까지도 연출은 나타나지 않았고, 연출없이 공연이 시작되었다. 각 파트별 감독들끼리 합을 맞췄다. 조명이 먼저 그리고 음향인 나오고 상황에 맞춰 영상중계를 하기로 했고, 관객들만 모르게 무사히 첫번째 공연을 마쳤다. 큐시트도 없이...
두번째 공연이 시작되서도 연출은 없었다. 첫 공연때 적어둔 필기가 각 팀의 큐시트가 되었고, 두번째 공연은 좀 더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곧 온다고 하던 밥도 두번째 공연 30분전에 와서 먹지도 못했다.(아..생각하면 또 열이 뻗친다)
이쪽판에 양아치 기획사가 많다고 하던데, 이정도 양아치는 그때 처음 경험했다.
삶도 마찬가지다. 변수의 연속이고 양아치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그럼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 조금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