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ncilk Jan 21. 2019

지금만을 위해 살아야 할 때

폴 오스터, <선셋 파크>

차가 브루클린 다리를 건널 때 그는 이스트 강 건너편의 거대한 건물들을 바라보며 사라져 가는 건물들과 사라지는 손에 대해 생각했다.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ㅡ 폴 오스터, <선셋 파크>



처음 폴 오스터를 알았을 때 그의 글에 끌렸던 이유는 'B급 정서' 때문이었다. 달의 궁전, 뉴욕 3부작도 그랬지만 결정적이었던 건 아무래도 '빵 굽는 타자기'였을 거다. 가장 많은 것을 가지고 가장 적은 일을 한 사람, 세속적 성공을 보장해 주는 온갖 이점과 재능과 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했으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선발하는 '크리스토퍼 스마트 상'을 창설했다는 부분에서 그야말로 빵 터졌고,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폴 오스터의 노예가 되었다. (폴 오스터 외에도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기호의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 도모토 쯔요시의 정신세계 등이 비슷한 이유로 나의 애정을 받았다.) 어쩌면 내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 정서를 이해하고 같이 빵 터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내 안에서 분리되어 있다.

이번에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빵 굽는 타자기'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오래 전에 내가 빵 터졌던 '크리스토퍼 스마트 상'에 관한 부분 중에서, 이번에는 그 상을 창설한 이유에 대해 폴 오스터가 덧붙인 뒷 문장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물론 그것은 일종의 문학적 치기였지만, 그 배후에는 불안과 혼란이 숨어 있었다. 나는 왜 실패를 정당화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까? 빈정조의 거만한 말투와 지적 과시의 태도는 무엇 때문인가? 어쩌면 그것은 두려움ㅡ내가 스스로 선택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ㅡ의 표출이었고, 그런 상을 제정한 진짜 속셈은 나 자신을 승자로 선언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뚤어진 응모 규정은 인생이 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타격을 피하고, 돈을 분산 투자하여 위험을 줄이려는 방책이었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고, 이기는 게 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최악의 사태가 일어난다 해도 나는 정신적 승리를 주장할 수 있을 터였다. 그것은 작은 위안이 되겠지만, 나는 벌써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두려움을 드러내는 대신, 재치있는 농담과 빈정조의 어투 속에 그 두려움을 파묻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다만 내 앞에 놓여 있는 힘든 싸움에 대비하여 나를 단련하면서, 예상되는 패배에 익숙해지려고 애쓰고 있었다.
ㅡ 폴 오스터, <빵 굽는 타자기> 중에서



처음 폴 오스터를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아도 무언가는 반드시 달라져 있을 것이다. 20대 초반의 여대생과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백수의 갭은 대다나다. 그래서 그때는 그저 치기 어린 '크리스토퍼 스마트 상' 창설 자체에 대해 낄낄거렸지만, 이제는 그 뒤에 담담하게 털어놓은 폴 오스터의 솔직한 고백이 더 눈에 들어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결정적인 순간이 되어서야 나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아직도 내 안에 많이 남아 있음을 깨달았고, 요즘 들어 자주 떠올리곤 했던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진실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은 변하되, 그 변해온 과정에서 파생된 수많은 스스로가 어느 하나 사라지지 않고 그 사람의 안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리하여 지금 이 시간의 경계선에서, 내 안에는 또 하나의 내가 자리하게 되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른 후 지금 이 시간들을 뒤돌아보았을 때, 그때서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선셋 파크'의 저 마지막 문장은 중요하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아야 할 때가 내게는 바로 지금인 것 같으니.




ㅡ 6년 다닌 첫 직장을 대책없이 그만두고 떠난 여행 중에 쓴 글


매거진의 이전글 상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