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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cilvibe Apr 08. 2024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하나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하나

스물둘 먹은 청년이 고민에 머리 싸맨다.

  형의 대학 졸업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졸업 가운을 걸치고 한 손에는 학사모를 들고 있는 형 옆에는 활짝 웃고 계신 아버지가 서 계신다. 저 미소에는 어떤 감정이 담겼을까. 뿌듯함? 대견함? 자신의 자식이 어엿한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며 퍼지는 웃음일지도 모르겠다. 그 깊은 속을 내가 알 도리는 없다만, 철부지처럼 보이던 형이 벌써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니 내 미래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큰 목표가 있어 대학에 진학한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사용하게 될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겠다 - 는 둥의 형식적인 이유가 있었긴 하다. 그 아래에는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이 깔려있었고, 마음속 진실을 들여다보면 남들 다 가니까 - 가 주된 이유였던 것 같다. 그동안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심정 반, 다니던 학교에 만족하지 못해 도피하는 심정 반으로 재수를 선택했다.

  운 좋게 들어온 대학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내세운 목표를 실현한답시고 공부해왔지만, 마음 한구석이 가려웠다. 생각해 보니 입학 전이나 후나 공부에 대한 선택은 내가 한 것이고, 그 값은 아버지께서 지불하셨던 것 같다. 공부하는데 돈 걱정하지 말라 하시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셨지만 어떻게 보면 내 부채가 막중한 셈이다. 이러한 부채 중에는 내 미래에 관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누구누구의 특혜로 어느 학교를 갔느니 하는 소식도 들려오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이런 축들보다 더 나은 부모님을 만나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께서는 어깨 위 지어진 짐들의 무게로 깨끗한 학비 봉투를 채워 주셨으니,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그 시인의 학비 봉투에 견주기에도 모자람 없을 듯하다. 누구는 어렵게 쓴 시를 쉽게 썼다고 부끄러워하였는데, 나는 어렵게 공부한 시간을 쉽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염치가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적당하지 않을까.

  염치없는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부채를 잘 갚아드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들 된 도리로서 받아온 것 이상으로 돌려드리고 싶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대체 무엇을 믿고 살아간단 말인가.  아버지의 어깨 뒤에 숨어 아버지를 믿고 살아온 지 만 이십이 년째, 더 이상은 뚜렷한 뜻도 없는 면목으로 그 어깨를 무겁게 하고 싶지 않다. 한편으론 역설이고 아이러니다. 이제는 학교에 기댈 수도 없고, 아버지께 기대고 싶지도 않다.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지만 결국 나는 나를 믿고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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