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에게 주문을 받는다. 음료를 만든다. 만든 음료를 픽업대에 놓고 진동벨 번호를 누른다. 손님이 오셔서 음료를 가져가시려는 찰나,
"어? 한 잔은 뜨거운 아메리카노인데요?"
주문서를 확인한다. 분명 아이스 아메리카노 '2'라고 찍혀 있다. 다른 사람이 주문을 받았다면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내가 직접 받은 주문이라 확실히 기억한다. 분명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개 하고요'라는 말을 들었다. 녹음이라도 했다면 들려드리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바리스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1 주문서를 보여드리며 확실히 아이스를 주문하셨다고 말씀드린다. 이미 커피가 나왔으니 어쩔 수 없이 드셔야 한다고 설득?한다.
2 그러시냐며 바로 음료를 다시 만들어 드리겠다고 한다. 그리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만들기 위해 샷을 뽑는다.
1번을 선택할 용기 있는? 카페는 별로 없다. 카페 입장에서 2번이 최선이다. 물론 1번과 2번 사이에 옵션도 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음료를 변경해 준다.’ 이 역시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음료를 다시 만들면 커피 한 잔의 로스가 발생하겠지만, 때론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여기서 ’더 큰 것‘이란 해당 손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 다시 방문을 하도록 하시거나 지인에게 추천을 하는 경우를 말하지 않는다. 또 그밖에 예상되는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서 2번의 선택이 최선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그런 이유도 중요하다. 엄청)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나’를 위해서다.
다시 상황을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이 경우 바리스타와 손님, 둘 중 하나의 잘못이다. 바리스타가 주문을 잘못 받았거나 손님이 생각한 것과 주문을 다르게 했거나. 바리스타의 실수가 있었다면 사과를 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하면 된다. 손님이 잘못 주문했다면? 그것을 손님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다. 잘잘못을 따지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모두의 감정은 상한다. 기분 나쁜 손님은 카페 재방문을 고려해 볼 것이고, 마음이 상한 바리스타는 그 순간부터 일에 집중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바리스타는 ‘커피 체인’의 최후방에서 사람들에게 커피를 제공한다. 이는 바리스타의 역할이 음료를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커피를 매개로 고객과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다. 한 손님과의 마찰로 인해 다른 손님에게 돌아가야 할 친절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즉 나의 기분과 평안을 위해 ‘기분 좋게’ 다시 음료를 만들어 드리면 된다. 나의 원만한 하루가 커피 한 잔의 값보다 가치 있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종종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하는 손님이 있다. 이럴 땐 손님 덕분에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하루가 된다. 나 역시 얼마 전 같은 실수를 했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드릴게요.”
“네?”
얼마나 민망하던지. 내 덕분에 내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