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이의암치료
사람들은 종종 내 아이의 치료가 다 끝나가는지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솔이의 암이 처음 진단된 후 벌써 일 년이 지났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던 사람들은 나의 비현실적인 순간이 종료되기를 간절히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지난 일 년간 솔이는 총 8번의 항암 치료를 끝냈고, 그중에 2번의 고용량 항암치료에서는 조혈모세포를 이식하기도 했다. 그리고 매주 진행된 외래치료와 응급실행을 반복하다 보니, 솔이의 공식적인 암치료의 프로토콜은 종료되었다.
지금은 이 모든 과정의 결과를 검사 중이다. 검사결과에 따라 방사선치료, 비타민치료, 면역치료 등 암치료를 위한 새로운 챕터가 열릴 것이다. 검사가 진행되는 이 2주간의 기간이 우리에겐 너무 고통스럽다. 솔이에게 특별한 치료가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검사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여기저기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솔이를 보면 가슴이 철렁한다.
'무슨 일이 또 있는 건 아니겠지...'
'제발 암 덩어리는 사라져 버렸기를...'
'내 사랑하는 솔이에게 치료 없이 살아온 날보다 치료의 삶이 더 길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고용량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 이식과정에서 망가져버린 솔이의 몸을 회복시키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솔이의 암이 처음 발견되었던 그때, 34개월 언저리에 있던 솔이의 몸무게는 14~15kg이었는데, 47개월이 된 솔이는 12kg이 되었다. 수술과 항암치료 이후 이유를 알 수 없는 설사가 하루에도 4~5번 지속되고 있고, 배가 아파 침대에 누워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우린 이런 솔이에게 먹이고 또 먹이면서 설사로 빠져나가는 솔이의 살을 채우는 중인 것이다. 먹고 싸고 누워있고 잠깐의 외출이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이지만 우리는 사실 생존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고, 또 다른 치료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일 년이 흘렀고, 난 답답한 마음 절반, 이젠 이 생활에 적응해 버린 나의 일상 절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 드디어, 앞으로도, 당분간은 솔이를 돌보는 것에 집중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에게도 갑작스럽게 그만둔 나의 일이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고, 솔이를 치료하는 동안 잠시 멈춘 나는 그 자리를 대신해 주는 고마운 선생님들과 마음으로 함께해 왔다. 하지만, 솔이와 함께하면서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돌봄의 시간들과 현장에서 멀어져 있는 나의 단절이 다시는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언제까지 나를 기다림으로 하는 자리의 보전이 가능할 것인가? 그래서 난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해오던 일자체가 지역사회의 문제와 청소년들의 일상 그리고 그들의 삶을 고민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는데, 내 아이의 아픔이 내 삶에 정착한 이 일 년 동안 내가 알게 된 것은 내가 해오던 일을 내가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솔이가 아픈 이후로 솔이문제 외에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나름 해오던 일이라 내가 하던 일에 대해 누군가 물으면 로봇처럼 답변을 술술 하는 것도 같지만 내 맘이 예전처럼 벅차지 않다.
어쩌면 지금이 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그 새로운 삶이라는 게 솔이와 함께하며 누리는 기쁨의 순간이 될 수도 있고 나를 돌아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기나긴 길이 아직도 조금 더 남아 있기에 나는 나아가보려고 한다. 하루 중 어느 순간은 이렇게 머리가 복잡하지만 그래도 솔이의 세계에 빠져 솔이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아침도 곧 밤이 된다. 단순하지만 결코 무난하지 않은 솔이와의 동행에서 난 삶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새벽비가 쏟아진다. 어제저녁에 하늘을 가득 매우던 먹구름이 이제야 해소되는 모양이다. 솔이가 멍하니 바라보던 먹구름이 맘에 걸렸는데 그나마 비가 내려 시원해진다.
어제저녁에 솔이와 동네 산책을 갔다가 우리 동네에서 가장 높은 3층짜리 건물의 옥상에 올랐다. 시골 한적한 동네여서 3층에 올라도 온 세상이 다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곳이다. 그 계단을 다 오른 솔이를 칭찬해 주고 지친 솔이를 안아 주었다. 그리고 맘껏 '야호'도 외쳤다. 솔이도 나도 그 소리에 가슴이 뻥하니 뚫리는 것 같고 한참을 그렇게 기뻤던 것 같다. 솔이는 그럴 때면 내게 안겨 '사랑해 엄마'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 표현이 솔이에겐 최고의 기쁨은 아니었을까.
근데 계단을 다시 되돌아 내려가다가 솔이가 잠시 멈춰 하늘을 봤다.
"왜? 솔이야?" 하고 묻자
솔이가 “먹구름을 보고 있어"라고 말했다.
"응 오늘 엄마랑 낮에 그려본 먹구름이랑 비슷해서 보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근데 난 왜 먹구름을 보니까 심심하지?"라고 말했다.
5살 남자아이가 내가 던지는 가장 쓸쓸한 이야기...
솔이의 세상엔 아직 엄마와 아빠가 전부이다. 우리가 솔이의 세상을 조금씩 넓혀주기 위해서 노력하고는 있지만, 우리가 지난 일 년간 잘해온 것일까? 솔이의 세상이 심심하고 우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한껏 즐겁게 솔이의 세상을 채워주고 싶다.
#신경모세포종고위험군 #소아암 #암치료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