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넬로페 Jul 11. 2023

청소년에게 청소년을

좌충우돌 1인 청소년공간 운영이야기

몇 달 전인가 청소년에 대해 강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청소년'에 대해서 청소년에게 강의를 한다고? 강의 주제를 듣자마자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었지만 강의를 통해 청소년을 만난다는 생각에 선뜻 ‘알겠습니다.’라고 말해버렸다. 그때 부터였다. 어딜 가나 ‘청소년에게 청소년을?’, ‘어떻게?’라는 생각만 하면서 일상을 보내게 될 줄이야…강의날짜가 다가올수록시 난감해지는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강의 제목으로 ‘청소년’을 정한다는 게 명확한 듯 보이지만 강의 대상이 청소년이 된 강의는 무슨 이야기로 채워져야 하는지…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오히려 내 입장에선 그들에게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축약어의 의미를 물어보거나 요즘 생활은 어떤지 배워와도 시원찮을 판에 내가 그들을 아는척해야 하는 게 영 맘에 걸리는 강의였다.


고민 끝에 뽑아 든 제목은 행복과 삶의 질이었다. 그나마 ‘청소년의 행복’은 내가 공부해 온 영역이고 사회가 청소년의 행복을 바라보는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을 테니까. 나로서는 이야기를 시작해도 될법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우리가 마주하는 청소년은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지만, 자신들의 삶이 어느 수준으로 힘든지 자신이 아닌 다른 친구들은 어떤 상황에 놓여 살아가는지 잘 모를 수도 있으니까 '행복'은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좋은 소재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강의에서 청소년들과 행복을 구성하는 척도와 행복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물리적 기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일반적으로 행복은 0에서 10이라는 척도를 사용해 측정하는데 가장 행복한 수준이 10, 행복하지 않은 수준이 0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질문은 ‘어제 기분이 어땠는지를 기준’으로 행복 수준을 묻는다. 이와 유사한 질문은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지의 질문이다. 이 질문 역시 0에서 10의 스케일을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세계행복보고서는 사람들의 행복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 물리적인 요건까지 살펴보고 있다. 경제 수준, 사회적 지지(의지할 사람이 있는가), 건강(기대수명), 의사결정의 자유, 집단 내 너그러움, 부정부패 등이 그것이다(세계행복보고서, 2023). 그리고 아동이나 청소년의 행복을 조사할 때도 유사한 척도와 물리적 환경 수준을 사용한다. 방정환재단에서 매년 발표되는 자료를 보면, 물질적 행복, 보건과 안전, 교육, 가족,  행동양식 등의 물리적 환경을 주관적 삶의 만족도와 함께 조사하고 있다(방정환, 2021). 그중에 내가 만난 정읍 청소년들의 삶은 어떨까? 우리의 주변환경은 어떨까에 대해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누어 갔다.


청소년 행복에 대한 찐한 대화를 나누고, 다시 몇 주가 흘렀을까,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 ‘행복’을 조사해 보겠다는 청소년이 연락을 해왔다. 정읍시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 물리적인 환경 수준에 비해 어느 정도 행복한지 분석해 보겠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설문지를 통해 정읍에 있는 학교 학생들로부터 응답을 받고, 자료조사를 통해 정읍의 물리적 환경을 조사해 보겠다는 취지의 계획서를 내게 보냈고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청소년’이라는 주제로 청소년을 만나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던 내가 오랫동안 고민했던 행복이라는 주제에 청소년들이 좀 더 탐구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오늘 행복을 조사하겠다는 4명의 친구들을 만나 조심스럽게 계획서를 함께 검토했다. 조사의 목적과 방향 우리가 기대하는 결론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설문지를 함께 보완해 보았다.


사실은 최근에 나도 정읍 청소년의 삶의 질 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청소년 공간을 운영하면서 내년 계획에는 청소년의 의견과 현재 상황을 잘 담아내기 위해서다. 기회가 된다면 행복에 관심을 보이는 이 친구들과 우리 공간의 연구도 함께 나누어보고 싶어졌다. 이 도시 정읍에서 행복을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과 내가 만나 어느 순간 동료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청소년'이라는 어려웠던 주제가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행복'으로 다시 태어났고, 누군가에게 울림이 되어 깊이 있는 탐구의 주제가 되었다고 하니...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때의 강의를 되돌아보니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나와 네가 우리 사는 삶이 좀 더 나아지기를 공유한 시간은 아니었는지 싶다.  

작가의 이전글 안녕, 달그락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