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란이 고등학교까지 다닌 고장에선 계절이 바뀔 무렵이면 축제가 열렸다. 벚꽃축제, 지평선축제, 철새축제, 눈꽃축제, 흥부박축제……. 삼 개월에 한 번씩 겨울과 봄, 여름과 가을이 찾아오므로 날마다 축제의 훈풍이 불어오는 듯했다. 고향을 결핍과 상실의 모태로 기억하는 지인들을 보며 수란은 뿌듯했다. 그들과는 반대로 고향을 떠올리면 정신적으로 풍요로웠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향은 냉혈한으로 변했다. 엄마가 경제적인 내리막길, 걷잡을 수 없이 가팔라지는 그 진흙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엄마는 오십 대 중반, 수란이 이십 대 후반에 들어선 시점이었다.
무엇이 고향을, 축제를 떠올리게 했는지 모르겠다. 무심한 듯 푸근하게 다가오던 짙푸른 바다였나, “나를 알아보는 게 싫어” 라고 말하는 듯 남몰래 피어 있던 동백꽃 한 송이였을까, 잊힌 첫사랑처럼 아득히 먼 바다 위에 까맣게 떠 있던 섬이었을까……. 아, 그렇지, 엄마라는 망부석. 그것에 얽힌 사연을 적어 내려가다가 고향에 발길이 닿은 거였다. 엄마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수란에게는 진짜 고향인 그 항구도시를 빼놓고 망부석의 전설을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
저녁 밥상은 잡곡밥, 해물찌개, 생선구이, 장아찌와 젓갈, 알타리 김치, 묵은지 등으로 푸짐했다. 부엌에 있는 반찬을 죄다 꺼내온 듯 많이 먹고 편히 쉬라는 진심이 느껴졌다. 뺑덕어멈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너 대신 내가 차린 밥상이구먼” 하고 말하는 것 같아서 수란은 뜨끔했다. 늦겨울에 어머니를 데리고 섬으로 기어든 여자의 속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서였다. 채소는 손수 밭에서 키웠고 생선은 직접 바다에 나가 잡았다고, 외연도의 풍경보다 자기 손맛 때문에 단골이 많다며 뺑덕어멈이 수선을 떨었다. 엄마는 그 수다스러움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뺑덕어멈이 “이거 드셔봐유, 속이 개운해유” 하면서 냇가의 작은 자갈 같은 마늘장아찌를 엄마가 먹기 편하게 놓아주었을 때, 수란은 속으로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했다.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저녁밥을 먹었는데도 저녁 일곱 시를 겨우 넘어섰다. 밖은 한밤중처럼 깜깜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면 좋겠는데 고장이 나서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떤 채널이든 알록달록한 형상들만 소리 없이 꿈틀거렸다. 억지로라도 추억담 따위를 꺼내놓으며 분위기를 바꿔 보려 해도 엄두가 나지 않아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뺑덕어멈이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외연도의 밤은 길고도 깊다면서 엄마에게 시선을 향한 채 말을 줄줄이 쏟아냈다. 자기 고향은 강원도인데 몇 해 전 남편을 따라 외연도에 왔다, 여기 토박이가 아닌 데다 햇살민박을 찾는 손님들이 많으니 동네 여자들이 시기하며 은근히 따돌린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내 몸 구석구석 성한 곳이 없다, 작년에는 오른쪽 다리에 철심을 박았다……. 웬일로 엄마가 “동네 여자들이 텃새를 부리나 보네요” “아이고, 철심을 박았어요? 저는 뇌와 심장을 다쳤어요” 하면서 말을 섞었다. 수란은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방에서 나왔다.
어둠은 안에서 볼 때보다 인상이 사나웠다. 불길한 숨결까지 느껴져 도로 들어갈까 하다가 허리를 곧게 펴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민박집이 즐비했으나 불을 밝힌 곳은 거의 없었다. 치킨집이나 편의점, 카페 등 편의시설이 간간히 보였지만 문을 닫았다. 생맥주, 삼각김밥, 뜨거운 커피가 불현듯 먹고 싶어졌다. 수란은 선착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다에는 흐릿하게나마 빛이 스며있었다. 어둠이 바다만큼은 덮치지 못했다. 선착장은 날개를 접은 고기잡이배들로 가득했다. 민박집이든 고기잡이배든 똑같이 불을 껐는데 그 어둠의 감촉은 사뭇 달랐다. 저쪽의 어둠이 정적이면서 침묵을 고수한다면, 이쪽의 어둠은 동적이면서 침묵을 깨는 느낌이었다. 새벽빛이 피어나기만 하면 밧줄을 풀고서 숨은 그림을 찾아 바다로 나아갈 고기잡이배들. 바다 어디에 그물을 던지면 넙치, 돌가자미, 민어 같은 숨은 그림을 찾을 수 있을까.
수란이 상경하여 처음으로 살았던 집은 옥탑방이었다. 비록 다른 집보다 두 배쯤 덥고 세 배쯤 추웠지만 마음만은 시원하고 따뜻했다. 수란은 엄마에게 살가운 장녀였다. 집이 파산하면서 엄마는 하필이면 가난한 장녀를 버팀목으로 삼았다. 수란은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장남인 듯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엄마와 단단히 묶이는 현실에 위기감을 느꼈다. 자신의 노후가 걱정되기도 했다. 엄마의 유일한 아들 Q는 집안 문제에서 발을 뺐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번듯한 일터의 주인이 되면서 오히려 철저히 거리를 뒀다. 엄마가 혼자 세 들어 살고 있는 단독주택에서 Q의 아파트까지는 승용차로 한 시간 남짓 걸렸고, 수란의 원룸까지는 쉬지 않고 세 시간 삼십분쯤 달려야 했다. 하지만 Q는 먼 나라로 떠나 소식이 끊긴 이민자처럼 굴었다. 독신이라는 수란의 처지가 Q로 하여금 냉담을 부추기는 듯했다. 어머니와 누나는 궁합이 척척 맞아요, 아들만 부모를 모시라는 법이 있나요, 누나는 미혼이니까 어머니랑 함께 살면 되지요……. 이런 생각을 하며 자기 몫의 부모 봉양의 의무까지 자연스럽게 떠넘겼으리라. 병든 노모는 물론이고 벌이가 시원찮은 누이까지 결국 거둬야 한다는 단정이 싹을 도려내듯 전화연락조차 하지 말자는 독한 마음을 품게 했을 테지. 그러나 Q, 이제 네 차례다. 수 십 년 동안 나 혼자 감당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그 시간의 반에 반만이라도 네가 감당해봐. 수란은 속으로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