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다녀올게

단편소설 8화

by 김설원

창문이 덜컹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수란은 이불을 발로 걷어 내며 몸을 일으켰다. 밤새 보일러를 틀어 놨는지 온몸이 눅눅했다. 엄마는 자기가 덮은 이불을 반듯하게 개켜 놓고서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수란은 순간 움찔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엄마가 당황하며 눈길을 돌렸는데, 잠들어 있는 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들킨 것 같은 눈빛이었다.

“눈발이 날린다.”

엄마가 창가로 다가가며 말했다. 창문을 열고 밖을 살펴보면서 오늘 배가 뜰지 모르겠다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때 뺑덕어멈이 “오늘 결향이에유” 하면서 방문을 열었다.

“강풍이 부는 것도 아닌데 무슨 결항이에요?”

수란이 창밖을 내다보며 대꾸하자 뺑덕어멈은 세월호 사건 이후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배가 뜨지 않는다며 손을 내저었다.

“옛날에는 선장 마음대로 했는디 지금은 그랬다간 큰일 나유. 위에서 내리는 지시를 철저히 따라야 한대유.”

“내일은 뜨겠죠?”

“모르지유. 배가 이삼 일씩 묶여 있는 건 보통이니께. 예전에 어떤 손님은 일주일이나 꼼짝 못 했슈.”

“여객선 말고는 나갈 방법이 없나요?”

“낚싯배를 부르거나 아니면 고기잡이배를 타고 나가는 방법이 있긴 해유. 내일도 결항이면 낚싯배를 알아봐 줄까유?”

“고기잡이배는 뭐예요?”

“여긴 집집이 배가 있어유. 이 정도 날씨라면 고기를 잡으러 나가기도 하니께 그걸 얻어 타면 돼유. 개인이 배를 모는 건 상관 안 해유. 그나저나 나도 큰일이네. 육지로 약을 타러 가야 허는디.”

뺑덕어멈과 엄마는 약을 매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후 심장까지 약해진 엄마는 아침저녁으로 약을 한 움큼씩 먹었다. 복용을 중단하면 몸에 바로 이상이 생기는,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아야 하는 동반자였다. 뺑덕어멈이 매번 엄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외연도의 무엇에든 엄마가 정을 붙여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천만다행이었다.

바람이 숙지근해지고 햇빛도 간간이 모습을 비춰 오후에는 결항이 해제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여객선을 뜨지 않았다. 어제 선장의 예언이 적중했다. 뺑덕어멈은 모처럼 놀러 오셨는데 날이 이 모양이라며 눈발이 그쳤으니 아쉬운 대로 달래나 캐러 가라고 부추겼다. 엄마가 반색하며 달래가 있느냐고 물었다.

“산에 달래 천지예유. 해풍을 맞고 자란 달래라 알이 얼마나 굵고 튼실하다구유.”

뺑덕어멈이 외연도의 명물은 봉화산이나 상록수림이 아니라 달래라는 듯 말하자 엄마가 모자를 쓰고 외투를 걸쳤다.

눈발은 그쳤으나 바람은 여전했다. 그 힘이 다소 약해지긴 했어도 달래를 캐러 갈 날씨는 아니었다. 뺑덕어멈이 알려준 길로 걸어가면서, 엄마는 자꾸만 구부러지는 허리를 의식적으로 폈다.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쉼터를 지나자 산으로 이어진 길이 나왔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꽤 경사진 길인데도 엄마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바다가 바싹 다가왔다. 바람도 함께였다. 지금까지 사납게 불어대던 바람과는 달리 부드럽게 감싸 주는 어떤 보호막 같은 촉감이 느껴졌다. 오솔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는 산이,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길잡이처럼 길을 안내했다. 바람이 대신 전하는 듯한 누군가의 쓴소리를 들으며 수란은 마음을 다잡았다.

“찾았다!”

엄마가 주저앉아 땅에서 달래를 뽑아 올렸다. 언제 챙겼는지 엄마의 손에 굵은 나뭇가지가 쥐어져 있었다.

“달래가 마늘 같다. 뿌리가 올챙이처럼 생긴 마트의 달래들과는 비교가 안 돼. 해풍을 맞고 자란 달래라 역시 골격이 다르구나. 아유, 여기는 달래 밭이네.”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풀들이 제멋대로 엉켜 있는 사이에서 어떻게 달래를 찾아내는지 신기했다. 달래는 비탈진 곳마다 무더기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겉은 보잘 것 없었는데, 캐보면 눈앞이 환해질 정도로 알뿌리가 크고 튼실했다. 엄마는 나뭇가지로 땅을 파헤치거나 손가락으로 살살 만지면서 달래를 캤다. 달래가 묻힌 길을 따라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져 원래 땅속의 탐스러운 달래였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상상을 하며, 수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수란은 땅속 깊이 파묻힌 달래를 캐다가 매번 뚝뚝 부러뜨렸다. 엄마는 어디 하나 다치게 하지 않고 달래를 손에 쥐었다. “여기도 있네, 저기도 있어” 하면서 엄마가 자리를 넓혀갔다. 달래를 캐느라고 파헤쳐진 땅은 새끼 멧돼지나 고라니가 놀다 간 흔적처럼 보였다.

달래가 수북이 쌓였다. 수란은 뿌리의 흙을 털고 메마른 줄기를 떼어 내며 달래를 다듬었다. 그러다 이 달래 캐기가 엄마와의 마지막 놀이일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절로 손이 멈춰지곤 했다. 엄마가 손을 털며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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