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6화
뺑덕어멈이 알려준 지점에 다다르자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왼쪽으로 가면 헬기장과 돌삭금이, 오른쪽으로 가면 노랑배 둘레길과 명금 약수터가 나왔다. 이정표 뒤로 희끄무레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하늘과 바다의 색깔이 엇비슷해서 하늘이 바다고 바다가 하늘인 듯 보였다. 푸릇푸릇한 색감이 턱없이 부족한 산은 완성도가 떨어지는 거대한 조형물 같았다. 엄마는 나무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위치였다. 작년 봄 뇌출혈로 입원해서 여름에 퇴원한 엄마는 조금만 걸어도 헉헉거렸다. 담당의는 현재 뇌출혈만큼이나 위험한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데 그동안 치료도 하지 않고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뎠느냐며 의아해 했다. 본격적으로 망가진 뇌와 심장을 치료하면서, 엄마는 무척 단순해졌다. 엄마는 자주 숨 고르기를 했다. 숨이 차는 순간 저승의 문턱이 보이는 걸까. 그때 얼른 숨을 고르면서 좀 더 살고 싶다고 뒷걸음질 친다…… 엄마의 숨 고르기는 본능이자 집착이었다.
수란은 벤치에서 몇 걸음 떨어져 바다를 바라봤다. 수더분하게 생긴 산들이 바다의 가장자리에 붙박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 흘러가는 듯했다. 저 멀리 사방에 조각조각 떠 있는 섬들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블로그에서 접한, 생기로우면서 낭만적인 외연도와는 다른 뜻밖의 감정이 자꾸만 수란을 어딘가로 꺼져들게 했다. 수란의 눈길이 엄마에게로 향했다. 점점 커지는 엄마의 뒷모습이 바다를 가렸다.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엄마가 망부석으로 변해버렸나 싶어 수란은 눈을 크게 떴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살아 있는 망부석. 수란은 이따금 답사여행에 동참하면 유적지의 안내문에 적힌 애달픈 전설을 눈여겨봤다. 연못가에서 탑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다 지쳐 못에 비친 탑의 환영을 보고는 남편을 그리며 물속에 뛰어들었다거나, 남편이 있는 나라를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세상을 떴는데 그 몸은 돌로 변해 망부석이 되고 영혼은 새가 되어 날아와 바위에 숨었다는 사연들. 수란은 눈앞에 있는 엄마가 어떤 연유로 망부석이 됐는지, 그 가슴 시린 전설을 머릿속에 새겨봤다.
김효덕은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남매를 키웠다. 양가 집안은 쌀 한줌도 보태줄 수 없는 빈한한 처지였다. 너무나 막막해서 남편을 따라 시커먼 강물에 몸을 내던지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솟구쳤다. 신이 계시다면 우리 아이들을 보살펴 주시겠지! 바위에서 뛰어내리려고 결심할 때마다 한 번은 동백꽃이, 또 한 번은 소쩍새가 김효덕의 마음을 붙잡아줬다. 그 후 김효덕은 동백꽃이 내 딸이고, 소쩍새가 내 아들이다, 생각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김효덕은 인정이 넘치고, 위험에 처한 이웃을 외면하지 못했다. 그 정신적 재산 덕분에 하는 일마다 꽃을 피웠다. 남매도 탈 없이 건강히 자랐다. 아버지의 정에 굶주린 남매가 가여워 김효덕은 그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주었다. 수완을 발휘해서 재산을 늘린 김효덕은 사내들의 먹잇감이었다. 그녀는 정교하게 짜인 음모에 휘말렸다. 이어지는 소송으로 가세가 순식간에 기울었다. 김효덕의 주변을 맴돌며 아첨을 일삼던 사람들이 냉큼 안면을 바꿨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남매는 직장을 가졌다. 아들은 안정적이었으나 딸은 불안정했다. 김효덕의 아들이 집안의 불행에 대해 거의 몰랐던 반면 딸은 속속들이 알았다. 원하는 대학과 직장에 가려고, 십 수 년 동안 공부에 매달린 아들을 위해 김효덕이 쉬쉬했기 때문이다. 훗날 집안 형편을 제대로 알게 된 아들은 아찔했다. 짐작은 했으나 이토록 무너졌다니! 빚은 또 어쩐단 말인가. ‘그동안 왜 제게 숨기셨어요, 어머니. 이제부터는 제가 힘을 보태겠습니다.’ 이런 효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은 서둘러 결혼을 도피처로 삼았다. 장녀는 어머니와 한 몸으로 움직이며 온갖 시련을 겪었다. 남동생이 자리를 잡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엄연히 아들이 있는데 자신이 장남 노릇을 하고 있었다. 김효덕의 장녀는 두 살 터울의 남동생에게 분노했다. 빈털터리에 병이 든 어머니를 수년 째 외면하고 있는 아들을 하늘이 벌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단죄하리라. 장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칼을 갈았다. 새해를 맞아 장녀는 어머니와 함께 섬으로 여행을 갔다. 그리고 어머니를 섬에 둔 채 남몰래 뭍으로 가는 배를 탔다. 김효덕은 날마다 바다를 바라보며 남매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동백꽃이 만발한 돌삭금에서 그대로 돌이 됐다. 이 섬마을에서는 해마다 동백꽃이 피면 어디선가 소쩍새가 날아와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