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이쓰더.”
유파가 누군가를 비웃는 표정으로 다소 거칠게 내뱉은 말이다. 언니와 내가 그 조소의 대상이 된 것만 같다. 가뜩이나 어색한 자리가 더욱 거북스러워진다. 위해(威海)여객터미널에서 만날 때부터 줄곧 무뚝뚝하게 굴던 유파의 낯빛은 당연히 어둡다. 우리 자매가 한국에서 중국의 소도시까지 가져온, 나무 빛깔의 상자에 담긴 물건은 칠피구두였다. 형광등 불빛을 흠뻑 빨아들인 검은 구두가 조청을 바른 것처럼 반들반들하다. 우리는 칠피구두와 유파를 포위하듯 앉아 있었다.
“이게 누구 신발이야?”
“척 보면 모르냐? 엄마 구두잖아.”
두 살 터울의 남매가 눈으로만 칠피구두를 쳐다보며 조잘거린다. 그나마 아이들 때문에 딱딱한 분위기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제 엄마에게 어떤 주의를 단단히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가족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으므로 나도 말을 아꼈다. 언니는 연신 미소를 흘리며 무슨 말이든 꺼내 시종 대화를 이끌었다. 이 중에서 심신이 피로해 만사가 귀찮을 사람은 바로 언니일 텐데도. 그때 유파가 칠피구두를 구석으로 밀어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여덟팔 자 모양으로 내팽개쳐진 구두에서 왠지 사위스런 기운이 묻어났다.
“구두가 참 멋지네요. 유행도 타지 않는 디자인이라 오래 신겠어요.”
“난 원래 구두 안 신어요.”
유파의 어기대는 말대꾸가 분위기를 또 싸늘하게 만든다.
나무상자에는 구두 외에 공단으로 감싼 물건과 편지도 들어 있었다. 편지지를 펼쳐든 유파의 두 눈이 불안정하게 깜박거렸다. 그녀가 편지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아이들이 칠피구두를 슬쩍슬쩍 만졌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갑판을 들락거리던 언니는 소파에 기대어 눈을 붙이고 있었다. 오로지 나만 유파를 주시했다. 공단으로 포장한 물건이 유파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듯하다.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텐데 어서 들어가 쉬어요.”
유파가 우리에게 방을 안내하고서, 취침 시간 운운하며 남매를 꾸짖더니 나무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서울에서 중국의 위해라는 도시까지 오는데 꼬박 열세 시간이 걸렸다. 위해여객터미널에 입항하여 선상 비자를 받느라 허비한 시간까지 합하면 열다섯 시간이다. 비행기로 넉넉잡아 한 시간이면 닿는 거리인데 굳이 배를 이용한 건 순전히 언니 때문이었다. 저녁 일곱 시 출항, 이튿날 아침 여덟 시 입항. 언니는 고집스럽게 이 노선을 따라 국경을 넘고 싶다고 말했다. 언니는 해운회사의 홈페이지를 보여주며 나를 구슬렸다. 나는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초대형 여객선에 혹해서가 아니라, 원하는 대로 해주면 언니의 꽝꽝 얼어붙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녹아내릴까 싶어 선박을 이용했다. 갑작스런 출국인데다 휴가철이라서 객실이 이코노미클래스뿐이었다. 그것조차 잔여 객실이 다섯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언니는 허둥지둥 마우스를 움직여 예매했다.
인천여객터미널은 시끌벅적했다. 여행객들은 하나같이 큼직한 가방을 들고서 개찰구에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삶에 대한 기대를 진작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객실은 군대의 내무반과 흡사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수속 절차를 밟던 언니는 침상에 배낭을 내려놓더니 치약과 칫솔을 챙겨서 나갔다. 언니는 어디서든 짬이 났다 하면 “화장실에 다녀올게” 하면서 자리를 떴다. 분명 그 남자와 전화통화를 하는 것이리라. 감시자로 동행한 처지였기에 그 ‘화장실 일탈’을 마냥 두고 보려니 께름칙했다. 그렇다고 휴대전화를 압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애초부터 탐탁지 않았던 중국 여행길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잘못이었다.